현장속으로 수요시위를 가다
지난 3월 29일 수요일,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을 찾았다. 그곳에는 지난 3월 15일로 700회를 넘긴 수요시위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목소리로 계속되고 있었다. “일본 정부, 보상하라! 보상하라!"며 몇십년 전 당한 일을 마치 어제 당한 일인 양 소리지르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깊은 한(恨)을 짐작키는 어렵지 않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추운 날씨에 예닐곱 명의 할머니들은 그날도 어김없이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회자는 주일대사관을 등진 채 할머니들과 참가자들을 향해 중간중간 재밌는 말도 섞어가며 시위를 진행했다. 할머니들은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고운 노란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들이 직접 그린 듯한 자그마한 그림을 손에 하나씩 들고 앉아서 때로는 구호를 같이 외치기도, 때로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성명서를 낭독한 후 한 무리의 노래패가 나와 개사한 노래를 할머니들에게 흥겹게 들려주고 이 노래를 모두 같이 따라 부르며, 시위는 다음 수요일을 기약했다.
수요시위는 지난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다. 간헐적으로 열리던 시위는 이후 정기적인 시위로 정착했으며 어느새 15년이라는 역사를 갖게 됐다. 그동안 이 시위가 얻은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시위가 시작된 199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아래 정대협)에서 이 문제를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기한 이래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국제법상 ‘인도에 반한 죄’이며 ‘전쟁범죄’로 규정됐다. 이는 국제적으로 세계 단체들과 연대해 힘을 얻고 공식적인 경로로 일본 정부에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정대협과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정식 배상요구는 아직도 일본 정부에 의해 묵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7백2회째를 맞았던 이 날 수요시위에 참가한 용선영양(상명대, 일어교육·06)은 “일본 대사관의 냉랭한 반응이 너무 속상하다”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수요시위가 무엇인지는 다 알 텐데 그들의 무심함 때문에 도리어 내가 할머니들께 죄송스럽고 수치스럽다”라고 시위 참가자로서의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이렇듯 일본 대사관의 내려진 블라인드와 굳은 표정으로 그 앞을 지키는 전경들의 모습은 제대로 책임을 보상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무심한 한국 정부의 태도 모두를 반영한다.
한국의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일본 총리의 망언 등 한·일 간의 외교문제가 불거지거나 과거 유명 여자 연예인의 '위안부 누드집' 파동 때 취재진에 의해 인산인해를 이뤘던 것과 대비돼 평소의 수요시위 현장은 한산하기만 하다. 과거 수요 시위를 다녀왔다는 선민서양(고려대, 국어교육·06)은 “누드집 파동 때 60년 쌓인 한을 일주일치 가십거리로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에 분노를 느꼈다”며 언론의 냄비근성을 비판했다.
정대협의 임지영 간사 역시 이러한 언론의 태도에 대해 “언론이 이슈화된 것에 집중해 기사를 쓰는 것은 이해하지만 피해자에게만 초점을 맞춘 기사는 지양했으면 좋겠다”고 언론의 감정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수요시위는 현재 단일 목적으로 단일 장소에서 최장기간 지속된 시위로 세계 기네스에 올라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이 결코 자랑스러운 기록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루 빨리 수요시위가 끝나 할머니들의 지친 몸과 마음이 편히 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