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면 어김없이 그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들려온다. 출근길에 오른 수많은 시민들의 아침을 ‘촌철살인’의 멘트와 풍자가 가득한 칼럼 한방으로 깨우는 그, 바로 이 시대의 지식인 진중권이다.

▲ 진중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날카로움 그 자체다. /사진 신나리 기자 journari@yonsei.ac.kr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그이기에 ‘작가 진중권’의 인상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 그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처음 ‘서양미술에 나타난 악마주의’라는 주제로 글을 청탁받게 됐어요. 낭만주의 시대 때 악마가 ‘천재성’의 표상으로 그 의미가 변하게 된 맥락의 과정을 썼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박정희의 영웅주의와 관련된 다른 글을 옹호하는 식으로 나간 거에요. 화가 나서 이를 ‘씹는’ 글을 썼는데 실리지 않았죠”. 결국 그 원고는 떠돌다가 『문학동네』에 실리게 됐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뒤이어 박정희를 옹호하는 『월간 조선』 조갑제 편집위원을 비판하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이 출판되고, 사회를 향한 진중권의 목소리는 조금씩 발현되기 시작했다.

 80년대 학생, 요즘 학생을 말하다

문득, ‘대학생 진중권’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지난 1980년대는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는데, 이때 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남들 다하는 정도로 시위에 참여하고, 유인물을 배포하곤 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과거에 비해 운동권 성향이 급격히 줄어든 요즘의 대학사회에 대해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학생운동의 목표가 해결됐고,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함에 따라 이를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앙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느끼는 대학생들의 모습에 대해 물어봤다.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수업시간에 자주 떠들어서 산만하다는 것이고(웃음), 두 번째는 예전과는 다르게 레포트나 성적 등 여러 가지에 매여있다는 거죠. 한편으로는 매우 안타까워요. 그래도 경직되지 않고 발랄한 점이 요새 대학생들의 가장 큰 장점이죠.”.그는 수업시간에 일어났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한번은 학생에게 지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부당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말에 주저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더라고요.” 그는 그 학생에게 되려 사과를 했다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쉽게 볼 수 없었던 모습이잖아요. 경직되지 않은 그와 같은 모습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독설’은 나의 힘

그는 ‘멀티플레이어’다. 전문서적을 써내는 저자이자 ‘SBS 전망대’를 매일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는 방송인이며, 칼럼니스트이자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하루에 길어도 5~6시간밖에 잠을 못 잔다는 그는 바쁜 와중에도 매일 오프닝 멘트로 나가는 칼럼도 직접 쓰고, 뉴스브리핑을 제작진과 같이 하는 등 자신의 일을 손수 해낸다. 그런 그도 본인의 날카로운 독설에 대한 반대여론이나 악플로 힘들었던 적은 혹시 없었을까. “악플은 대부분 비논리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 되려 나는 이를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역시 ‘진중권’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그에게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오히려 어떤 이슈에 대해 어떤 입장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미디어에 늘 노출됨에 따라 오는 피로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럭비공이라 불러다오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스스로 ‘저자’라고 불리고 싶다고 한다. 그가 그리고 있는 향후의 그의 모습이 궁금해졌다.“봄 개편때 방송을 그만둘 생각이다. 한 2년간 ‘돈만 벌자’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은데(웃음), 이제는 공부에 전념하고 약간의 ‘유희’를 즐기고 싶다”라 답하는 그. 저자로서 그는 앞으로 그의 전공분야인 미학과 관련된 미디어미학이나 기술미학에 대한 연구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이 외에도 진보매체가 생긴다면 다른 이들과 연합해 돕고 싶은 생각도 있고, 그만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 초경량항공기 조종법을 배워 2차대전때 사용되던 전투기를 몰고 싶은 것도 꿈이란다. 조심스럽게 ‘정계진출’이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주저없이 그에게 돌아온 답은 “난 정치하기 아까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정치는 타협과 합의를 하는 하는 일인데, 내가 하는 건 정 반대의 일”이라며 “지적 생산의 핵심은 ‘차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외의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나의 과제”라고 그는 당당히 말한다. 덧붙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다는 말이 내게 있어서는 최고의 찬사”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정의해낸다.

인터뷰를 끝내며 그는 대학생들에게 “훌륭한 연애(戀愛)인이 돼라”는 당부를 남겼다. “난 아직도 젊은 미혼 남성들에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웃음). 우리 세대는 데모만 하느라고 연애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배우는 ‘착한 연애’를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거침없는 말투와 열정적인 모습을 가진 그를 보며 ‘역시 프로답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꿈 많은 이 시대의 지식인, 진중권.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기다려진다.

 /이민성 기자 wait4yo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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