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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토불이] 짙은 안개 속에 감춰진 삶의 무게
  • 권형우 기자
  • 승인 2006.03.27 00: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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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반쯤 졸다 눈을 떴을 때, 순천역에 도착했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역에 내리자마자,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순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끈 채 소설 속 주인공 윤회중이 무진에 도착했던 바로 그 때처럼 ‘안개의 고장’ 순천에 무거운 첫발을 디딘다.

60년대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김승옥. 그의 작품『무진기행』은 출간되자마자 평론가들로부터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우리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우뚝 섰다. 소설의 무대인 ‘무진’은 가상의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후에 작가는 고향 순천을 무진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말한다.


안개의 도시, 순천

▲ 안개 낀 갈대숲 사이에 놓인 다리. 회중과 인숙이 지나간 다리가 아닐까. 상상에 잠긴다. /사진 조진옥 기자 gyojujinox 유재동 기자 woodvil@


무진에 명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의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무진기행』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설 첫머리에 잠시 등장하는 안개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순천만 근처로 이동하는 와중에 택시 기사에게 순천의 명물이라는 안개에 대해 물었다. “안개가 예전만큼은 못하다”고 말한 뒤 그는 실망스런 기색이 역력한 기자의 눈빛을 눈치챘는지, “그래도 순천만의 안개는 명불허전”이라며 안심시켰다.
과연 그 말 대로였다. 순천만의 아침은 회색빛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손에 잡히지 않고 냄새도 맡을 수도 없지만, 마치 우뚝 선 성벽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안개. 아름답게 펼쳐진 순천만의 물안개는 이곳이 마치 현실과는 다른 세계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름답고 깨끗한 순천만의 안개. 하지만 곧 해가 뜨면서 안개는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못한 안개의 불완전한 모습. 이는 무진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 결국 좌절하고 마는 주인공의 삶처럼 안타깝고 서글프다.

기와지붕들도 양철지붕들도 초가지붕들도 유월 하순의 강렬한 햇볕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 어디선지 분뇨 냄새가 새어 들어왔고 병원 앞을 지날 때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빠진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회중은 이모 댁에 들러 여정을 푼 뒤 무진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무진, 즉 순천은 작은 농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20년이란 세월은 순천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국토 끝자락 자그마한 시골마을이었던 순천은 이제 전라남도에서도 손꼽히는 도시로 변했다. 버스 터미널과 역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광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자신들의 위용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나마 소설 속 무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래시장 부근이었다. 지금은 변두리에 불과하지만, 한때 중심가였던 이곳의 골목들은 옛 순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간직하고 있었다.

변모한 순천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순천고등학교 주변으로 이동했다. 작가 김승옥이 문학의 꿈을 키워나갔던 곳 순천고등학교. 한때 문학 소년이었던 주인공을 존경하는 후배 ‘박’과, 그리고 무진으로의 탈출을 갈망하며 회중과 사랑을 나누던 ‘하인숙’이 근무하는 곳이다.

▲ 김승옥의 모교 순천고등학교.
이 곳 교실에서 그는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을 것이다.

소설 상에 등장하는 우거진 포플러나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찾아간 학교에는 기대했던 포플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저 대로를 따라 포진한 소나무들과 몇몇 앙상한 나무들만이 눈에 띈다. 졸업식이 방금 끝나 텅 빈 교정과 황량한 나무들의 모습은 왠지 모를 쓸쓸함과 적막함을 느끼게 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몇 사람 끼여 있었고 비옷을 입은 순경 한 사람이 방죽의 비탈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노파 한 사람이 혀를 차며 웅성거리고 있는 학생들의 틈을 빠져나와서 갔다. 나는 방죽의 비탈을 내려갔다. 순경 곁을 지나면서 나는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자살 시쳅니다"

대로를 따라 걷다보니 순천의 중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인 동천에 다다랐다. 회중이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목격했던 그곳. 그는 자살한 여자의 시체를 보며 젊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전쟁에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락방에 숨겨졌던 회중. 그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쥐 죽은 듯이 숨은 채 수음을 하는 것뿐이었다. 회중은 고통스러웠던 젊은 날을 떠올리며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여자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 누가 흘리고 갔는지 동천가에 쓸쓸히 떨어진 스카프 하나

지나가는 한 아주머니에게 『무진기행』의 이야기를 꺼내며, 동천에 대해 묻자 아주머니는 “아직도 다이빙이나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져죽는 사람이 종종 생길 정도로 이곳은 꽤 위험하다”며 다리 옆에 세워진 낡은 경고판을 가리켰다. 김승옥의 팬이라는 아주머니는 “이곳을 걷다보면 종종 소설 속 장면들이 아련히 떠오른다”며 “저 강은 말없이 흐르지만, 그 물결 속에는 소설 속 주인공의 겪었던 삶의 번민이 한껏 담겨져 있는 듯하다”고 말한 뒤 쓸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삶의 기로, 순천만 방죽길.

▲ 오랫동안 타지 않은 듯 순천만에 서서 잠드는 녹슨 배

이제 차창 밖으로 멀어져가는 시내를 바라보다 바닷가로 눈을 돌렸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회중이 하인숙과 만났던 방죽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회중과 하인숙이 거닐며 사랑의 밀어를 나눴던 곳. 길 옆에는 무성한 갈대들이 바닷바람을 맞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저들도 순수하고 참된 삶과 속물적 삶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회중의 아픔과 고뇌를 알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결국 회중은 아내의 전보를 받고 무진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그는 순수했던 자신의 옛 모습 대신 속물적이고 일상적인 삶을 택하며 ‘단 한번만 현실을 긍정하자’고 절규한다. 회중의 절규는 속물과 금전주의로 점철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납득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닐지. 아름답지만 영원할 수 없는 안개처럼, 무거운 현실의 벽을 넘어 아름다운 이곳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순천을 떠나 서울로 돌아가던 와중, 멀리 흑두루미 떼가 대열을 이루며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 역시 저 야성 속에서 살아가는 새들처럼 순수함을 간직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새들은 이미 떠나가고 없었다.

권형우 기자  spinoz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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