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낸시 랭을 꼽을 수 있다. 고상함과 순수함을 강조하는 한국 미술계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대담함으로 하나의 아이콘이 돼버린, 최근엔 쌈지 스페이스의  디자이너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 그녀를 찾았다.

 처음엔 그녀의 독특한 퍼포먼스들에 비해 의외로 평범한 헤어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안 해본 머리가 없을 정도로 이미 모든 헤어스타일을 섭렵한 뒤였다. 외국에서 자유분방한 고교 생활을 하면서 머리에 온갖 장난(?)을 쳐봤다고 한다. “뭐든지 끝까지 다 해봐야 돼요. 그게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노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확실하게 다 해봐야 해요, 다.”

 그녀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감에 있어서 두려움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매일의 일상이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 사회에서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어요. 내 꿈을 비록 사람들이 비웃을지라도 단번에 되는 일은 없잖아요. 꼭 이뤄낼 수 있다는 그 믿음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꿈을 현실로 가져오다

 돌이켜보면 그녀 자신의 삶이 그러했다. 겉으로 보기엔 부유한 청담동에서 자란 철없는 소녀 같지만, 대학생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암에 걸려 가세가 기울었었다. 작업실도 구하지 못해 미래가 불투명해보이던 그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잊지 않았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초대받지 않은 채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퍼포먼스를 하게 했으리라. 현실과는 동떨어진 어디서 만들어낸 이야기 같지만,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판타지를 직접 일궈낸 결과다. 이러한 그녀의 가치관은 작품에도 잘 반영돼 있다. 그녀의 작품인 ‘타부 요기니’는 인간에게 퇴색된 꿈을 이뤄주는 신과 인간 사이의 영적 매개체다. 그녀는 “꿈이란 현실로 가지고 오기 위해서 있는 것이죠. 저는 믿는 자는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느니란 말을 제일 좋아해요”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뿐 아니라 다른 젊음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어 했다. 그녀의 이런 생각은 그녀의 최종 소망이 서울을 뉴욕처럼 현대 예술의 메카로 만들고 나아가 소녀소년들을 위한 ‘낸시 랭 재단’을 세우는 것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것은 낸시 랭이 생각하는 예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꿈과 판타지’를 얻어갔으면 한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이 비주얼상 독특한 것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녀는 예술이 가볍기를 원한다. 채널을 빨리 돌려버리는 현대인들의 눈길을 더 길게 머물게 하고 싶고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메시지들을 많은 사람들이 느껴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예술 이외의 모든 것이 비즈니스”

 각종 미디어에서 애교의 여왕으로 소개된 그녀지만 마냥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소녀는 아니다. 그녀는 자본주의 사회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고 그 안에서 예술의 나아갈 길을 명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예술 이외의 모든 것이 비즈니스다”라고 분명히 말하는 그녀는 “작가 자신이 비즈니스적 마인드를 가져야 해요”라며 예술가들이 더 이상 이용당하지만 말고 조금 더 영악해지기를 바랐다. 그 말은 돈을 밝히라는 것도, 나빠지라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목소리다.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그 모든 과정이 비즈니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너무 예술이 돈과 무관한 분야로 포장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렇듯 그녀는 가치관이 확고한 예술가였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저의 꿈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는거예요”라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기자의 마음은 순간 떨렸다. 그녀의 처음은 자신의 퇴색돼버린 꿈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였지만, 언젠가는 그녀의 새롭게 자란 또다른 꿈을 전 세계가 주목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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