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연인>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

푸른 해원을 향해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을 흔들지만 끝내 닿을 수 없음에 애달파하는 청마 유치환의 시 「깃발」. 이는 훗날 한 여인을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편지로밖에 전할 수 없는 시인 자신의 안타까운 운명을 예견하고 쓴  시가 아닐까.

청마 유치환은 서른여덟살이 되던 1945년, 통영여중 교사로 부임했고 그 곳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던 운명의 여인, 정운 이영도를 만나게 된다. 고운 얼굴에 티 없는 옥처럼 단아한 정운을 본 순간 청마의 마음속에서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그러나 어긋난 인연의 탓인지 당시 청마는 이미 결혼을 해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고, 정운 역시 결핵으로 남편을 잃은 청상이었다.

그러나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청마는 그 후로 정운을 향해 절절한 연모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정운은 이를 단지 우정으로만 여겼지만 청마의 한결같은 사랑에 점점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남편을 잃은 가운데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기 때문에 정운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통영의 청마문학관 신효철 관장은 “정운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겪은 청마의 고통이 생애의 목마름과 허무의 의지가 담긴 시로 승화된 것”이라며 청마 문학에 정운의 영향이 크게 미쳤음을 설명했다.

정운이 사회적 제약 때문에 속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청마의 사랑은 그가 생을 마칠 때까지 21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시간 동안 청마가 보낸 편지가 무려 5천여통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키보드만 두드리면 되는 이메일의 수가 그 정도라도 엄청난 것인데 손으로 직접 쓴 편지가 5천여통이라는 것에 정운을 향한 청마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한결같이 ‘사랑하는 정운’으로 시작해 ‘당신의 마’로 끝을 맺었던 청마의 편지는 그가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면서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청마가 세상을 뜬 후,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은 곧 화두가 됐다. 그리고 5천여 통의 편지 중 추려진 2백여통의 편지는 당시 『주간조선』에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연재됐으며 훗날 같은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됐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도 여러 장벽에 가로막혀 용기를 내고 있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청마 유치환 선생은 말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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