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헌영(법과대학 강사, 광운대 법학과 겸임교수)

 지난 3월 16일 대법원은 본격적인 변론을 시작한 지 1개월만에 새만금 사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1987년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시작된 새만금 사업과 관련한 개발론과 환경론의 지리한 논의는 3년여의 송사 끝에 일단락 되었다.
 판결이 선고되자 개발론자는 쌍수를 들었지만 환경론자는 고개를 떨구었다. 대비되는 두 진영의 모습은, 마침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한국과 일본의 야구경기 결과만큼이나 극적으로 비쳐졌다.
 환경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오심에 의해 미국에 승리를 내준 일본팀의 심정처럼 심판인 대법원에 섭섭한 마음이 생기기도 할 법하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판결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대법원으로서도 많은 고민을 갖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론은 비단 새만금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대법원의 변화 움직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수많은 '새만금'과 수많은 '천성산'이 계속해서 대법원의 판단을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판결이 행정사건이고 소송의 형태가 사업인허가 처분의 위법, 부당성을 다투는 항고소송(약자인 국민이 강자인 행정청을 상대로 행정청의 판단에 항의하여 그 판단을 취소 또는 변경토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소송)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법원이 개발론과 환경론에서 환경보다는 개발이라는 '가치를 판단한 것'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대법원은 그저 공익의 집행자인 행정청이 법률의 근거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거쳐 확정한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는 위법사실이나,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진행되어 오면서 변경된 사정(경제성, 환경침해의 정도 등등)이 아직 행정부가 이미 내린 결정을 취소하거나 변경할 만큼 중대한 사항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일 뿐이다. 게다가 1조 7천 억이라는 국고가 이미 집행된 사정을 고려하면 더욱 사업을 취소 또는 변경하는 것보다 빨리 진척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이 본격적으로 개발의 가치와 환경의 가치를 비교형량하기보다 이미 결정을 내린 행정부의 가치판단에 위법이 있었는지를 소극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는 우리 사법문화에서 아직은, 권위주의적 시대의 전통이 물려준 사법소극주의가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개발과 환경 사이의 가치를 법원이 직접 비교형량함으로써 행정의 자율성과 전문성 및 기술성을 침해하는 것보다 행정청으로 하여금 공익적 가치의 판단을 하도록 맡겨 두는 것이 국가목적 실현에 더욱 합당하다고 하는 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소송구조에서는 마치 타이틀을 방어하는 챔피언을 이기려면 챔피언보다 월등 좋은 실력을 보여야지 비기는 수준으로는 타이틀을 따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후의 또다른 환경행정사건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해 두는 것이 환경론자들에게는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사법소극주의에 대한 일단의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환경사건에 대한 하급심인 행정법원에서는 전문적인 심리를 강화하고 쟁점사실을 직접 확인한 후 원고승소 판결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도 초기에는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또한 반대의견을 제시한 대법관들의 의견은 법원이 절차의 위법성 등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치판단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부가적 의견을 통해 정부로 하여금 공사를 계속하는 것이 개발론자들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론자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정부의 자세 등 향후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번 소송은 법원이 개발과 환경의 가치 중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의 조화를 정부에 다시 맡긴 것이다. 따라서 향후의 새만금 사업이 개발과 환경의 가치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하는 노력은 정부의 몫이고, 이 과정에서 환경론자의 참여를 보장하여 갈등을 통합으로 승화하는 일이 남아 있다.
새만금 사업은 끝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것이고 여기에 개발과 환경의 가치 조화의 능력을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지의 시험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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