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CE탄생과정에서 지도자의 역할과 안보위협인식을 중심으로

대학원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학문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대학원 총학생회 학술국에서 선정한 우수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의 논문은 2005년 연세학술논집 제 42집에 실렸다.

<논문요약>
탈냉전 이후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자안보협력이 주목받고 있다. 다자안보협력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신현실주의에서는 동맹과 같은 형태로 국가들이 의도하는 특정한 목적, 즉 상대적 이득이 있을 때 다른 국가와의 협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신자유주의에서는 국가간 절대적 이익 확보가 가능하다고 보고, 국가간 협력을 저해하는 불확실성이 제도를 통해 제거됨으로서 국가간 협력이, 경제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안보분야에서도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등장한 구성주의는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론을 관념의 요소를 무시하고 물질적 측면에만 관심을 가짐으로서 국가간 관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들은 국제체제의 구조를 신현실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힘의 배분이 아닌 관념의 배분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보고, 이 사회적 구조는 공유된 지식, 물질적 자원, 관습 등과 같은 요소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행위자의 정체성과 이익을 구성하고 정체성과 이익은 행위자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에서 정체성과 이익은 외생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파악하는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성주의는 행위자 사이에 존재하는 관념의 공유 여부가 국가간 협력과 갈등을 설명하는 중요한 변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구성주의적 시각에서 국제관계를 분석하는 대부분의 연구들이 정체성 변수의 중요성만을 수용하여 이를 독립변수로 사용, 국가행위 또는 국가관계를 분석하려고 하는 반면 이를 종속변수로 설정해 어떤 변수가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가에 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유럽의 다자안보협력 사례인 유럽안보협력회의(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CSCE)의 탄생과정을 통해 유럽의 집합적 안보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었는가를 살펴본다.

유럽의 집합적 안보정체성의 변화 연구

이를 위한 분석 방법은 CSCE의 발전과정에 대한 궤적을 추적하면서 이 가운데 나타난 집합적 안보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변수를 확인하는 역사적 접근을 통한 사례연구를 시도하며 이를 위한 연구범위는 시간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유럽안보협력회의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1975년까지로 한정하며 공간적으로는 CSCE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표현되는 집합적 안보정체성은 유럽이라는 경계 속에서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화?역사 정체성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다자안보협력의 관점에서 안보이슈에 대해 CSCE 참여국간에 형성된 관념의 공유를 의미한다.
단순히 CSCE가 출범한 결과만 가지고 유럽에서 집합적 안보정체성이 형성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제도화가 1975년 출범 이후 참여국간의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 CSCE 틀 내에서 유럽군축회의(Conference on Disarmament in Europe, CDE)와 유럽재래식전력 감축협상(Conventional Armed Forces in Europe, CFE) 등의 군사 분야에서 가시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CSCE가 일회적 기구나 강대국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안보협력을 위한 진정한 기제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CSCE 출범 이전 집합적 안보정체성 형성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도자 역할과  안보위협인식의 중요성 확인

여기에서는 1975년 CSCE가 출범하기까지의 시기를 두 단계로 구분했다.  첫 번째 단계는 CSCE 잠재기로 이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CSCE 형성을 위한 논의가 제시되기보다는 나토와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로 구분되어 동맹 블록 간 대결이 심화되었던 시기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CSCE논의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196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때에는 동맹 블록내에서만 집합적 안보정체성이 형성됐고 동맹 간에는 여전히 갈등적 정체성이 형성됨으로서 유럽적 차원에서 집합적 안보정체성 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CSCE 형성기로 1960년대 중반이후 소련을 중심으로 한 WTO측이 1966년 부카레스트 선언을 통해 유럽안보협력회의를 서방측에 제안하고 이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측이 1968년 아이슬란드 나토 외무장관회담에서 상호균형감군회담(Mutual and Balanced Forces Reduction, MBFR)을 제안함으로서 상호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공감한 시기에 해당한다. 이후 양측은 1972년 5월 모스크바 정상회담을 통해 CSCE와 MBFR협상을 병행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CSCE를 통한 나토와 WTO간의 안보협력논의가 급진전을 이룸으로서 유럽에서 집합적 안보정체성이 형성되게 됐다.
결과적으로 유럽지역의 집합적 안보정체성은 지도자, 특히 미국과 소련 지도자들의 역할과 안보위협인식에 의해 각기 다르게 형성됐으며, 어떠한 안보정체성이 형성됐느냐에 따라 지역 내 안보협력이 어렵기도 하고 가능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위 논문의 주제와 연구과정에 대한 이해를 위해 연구자인 지효근씨(정치학, 박사7학기)를 만났다.
△ 이와 같은 주제를 선정하게 된 배경은?
국제정치를 연구하면서 알게 된 대부분의 이론들은 주로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중시하는 물질적인 관점이 많았다. 하지만 탈냉전 이후부터는 국가들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으며 국제정치를 단순히 물질적인 관점에서만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그런 관점을 벗어난 관념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 연구과정에 있어서 어려웠던 점은?
정확한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기가 매우 어려워 개념의 명확한 정의가 힘들었다. 그래서 유럽 지도자들의 독트린, 국제회의석상에서의 연설문 등을 분석해 연구를 했다.
△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 후배 연구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논문은 기존의 관점을 벗어나고자 했다. 따라서 문화, 정체성 등 관념적인 요소들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물질적인 관점 또한 간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균형 있는 시선으로 연구해 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 유장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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