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알간 동백꽃이 마치 멀리서 온 손님들을 반기는 듯 활짝 피어 있었다.

 

 

 

 

 

 

 

 

 

 

 

 

 

 

 

 

 

 

‘산넘고 물건너’
 
저기 멀찍이 떨어져있지만 사람과 자연의 꾸밈없는 훈훈함에 친밀감이 벅차오르는 곳이 있다. 딱딱한 건물들과 낯선 얼굴들의 틈에서 지친 이에게 쏘여진 한줄기 봄볕은 어딘지 모르게 남도와 닮아있다. 겨울에도 어린 보리들로 늘 푸른 빛을 띄는 남도의 섬들. 섬인데도 차마 모질지 못한 바람결을 타고 이른 봄의 색깔이 짙은 남도로 훌쩍 떠나보자. 그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문화 공간도 발견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서울에서 해남은 다섯 시간 남짓 걸린다지만 이 말만 듣고는 그곳의 위치가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각종 근심 걱정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어느 덧 창밖으로 보이는 완만한 능선이 남쪽에 가까워짐을 알려왔다. 버스가 남으로 더 깊숙이 내려가기를 기다려 드디어 해남에 당도했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열을 올렸던 이유를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질박한 황토와 봄을 재촉하는 따스한 겨울비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준다.

‘고산 윤선도’ 이 다섯 글자를 들으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어부사시사』와 『오우가 』를 떠올린다. 그의 은둔지 보길도까지 기억한다면 당신은 아마 훌륭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목 놓아 노래한 자연의 실제 모습과 그 뒷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고전이라 어렵게만 여기는 고산의 시는 그 시대의 대중 가요였으며, 그는 지조를 중시하는 사대부이기 이전에 노래를 짓고 풍류를 좋아한 문화인이었다는 것, 기자 또한 남도를 다녀온 뒤에야 새삼 느끼게 됐으니... 

 

▲ 오랜 세월의 흐름을 짐작케 하는 고산 고택의 이끼. 그리고 어지럽게 얽혀있는 나뭇 가지들.

 

▲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그리 시켰을까? 집안 곳곳에 곧게 선 대나무는 어지러운 마음까지 곧게 펴주는 듯하다. 고산, 그의 마음 속 고향 해남으로 고산이 ‘몽매에 그리워한’ 두 곳이 있었으니 첫 번째 장소가 해남이다. 군내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고산 고택 유적지는 해남 윤씨 종가집으로 한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그에게는 늘 향수의 대상이었다. 한 번 내려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하는 그 곳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삭혔을지. 그에 비하면 너무 쉽게 와버린 듯한 미안함을 안고 허름한 정류장부터 뻗어있는 길을 따라가니 어느 새 고택의 입구다. 늦은 오후, 인적이 드문 고택의 허전함을 초록이 메워주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 곧게 선 대나무, 300년이 넘은 노송은 『오우가 』를 흥얼거렸을 그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청아한 고택을 거닐다보면 밀려드는 운치에 일렁거리는 마음속으로 어디선가 맑은 공기가 들어온다. 은은한 향내와 사철나무들이 뿜어내는 숨결이 섞인 지금. 이곳에서는 신촌 명물거리의 복잡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답답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여유를 놓치기 싫어 고택에서 돌리는 발걸음은 자못 아쉽기만 하다. ▲ 바다 위에 홀로 자리 잡은 바위섬. 출항하는 우리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하다.
보길도. 이는 고산이 제2의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던 곳이다. 그는 왜 뭍에서 뚝 떨어진 그 섬에서 머물렀을까? 예로부터 섬을 천간이라 여기고, 육지를 민간과 세속이라 여겼다는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이런 추측 속에 보길도행 배에 올랐다. ‘관직의 미련을 버린 고산은 제주도로 은둔하려던 길에 발견한 보길도에 머물렀다’는 설명에 보길도에 대한 기대는 커져만 간다. 혼인 첫날 밤 신랑 얼굴을 처음 보는 새색시처럼 가득 찬 설렘을 안고 배는 부두에 정박했다.

▲ 거울이 필요 없다. 내 마음까지 맑아지는 듯.
안개 낀 하늘과 하나가 된 초록빛 바다를 향한 구부정한 길은 부두에서 ‘부용동’ 초입으로 우리를 데려다 줬다. 고산의 인공 정원 중 가장 유명한 곳, 세연정이 눈앞에 펼쳐진다. 잔잔한 연못의 수면과 소슬거리는 나무 사이를 헤매는 바람 속에서는 시가 나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고요한 수면에 비친 풍광에는 늘 그 곁을 맴도는 사철나무와 각양각색의 재미난 바위가 담겨있다. 혹시 뛸지 모른다고 지은 혹약암, 활쏘는 무사를 닮은 사투암 등 바위에게 꼭 맞는 애칭을 붙인 그의 섬세함에 미소가 번진다. 잠시 숨을 돌려 들른 세연정의 근처 고산 윤선도 문학체험관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른다. 돌길을 따라 걸으며 어부 사시가 40수 한 수 한 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이다. 그가 본 것, 들은 것은 모두 시가 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 가파른 절벽, 탁 트인 전경은 신선이 살아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고산이 보길도에서 남긴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동천석실’ 표지판이 보인다. 지나가던 마을 주민 한 분의 “빠르게 가면 십분이고, 느리게 가면 한 시간걸리지”라는 정감가는 말씀을 듣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가팔라지는 길을 헤쳐 산중턱에 다다르자 동천석실이 탁 트인 전경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아담한 정자를 중심으로 바위들과 푸른 소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는 동천석실 속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밀려오는 평온함에 눈이 감긴다. 신선처럼 소요하는 군자의 처소라고 이름붙인 연유를 알 듯하다. 구름 위에 앉은 듯한 이곳에서 길게 누운 능선, 촘촘히 깔려있는 연둣빛 보리밭은 종일 내려다보아도 살갑게 느껴질 것만 같다. 보길도 곳곳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들은 시 속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윤곽을 발견할 수 있다. 자그마한 섬 바람에 담긴 짠 소금 내음처럼 진하게 배어있는 그의 향취가 여전히 섬 주변을 맴돌고 있어서가 아닐는지. ▲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 청해진은 이런 바람을 이겨내고 세워졌다.
장보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둥둥둥둥~ 쏴쏴~ 칼과 창이 부딪치듯 배의 엔진소리는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배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던 거품 물감은 초록빛 바다를 도화지삼아 매순간 그림을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 흔적은 파도에 묻혀 사그라지고, 배는 복잡한 미로를 빠져나가듯 섬과 부표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우리들을 목적지인 완도로 데려다 줬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부두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는 사람들을 시내로 부지런히 실어나른다. 수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 중에는 세트장을 찾은 우리 일행도 포함돼 있었다. 시내에 막 도착한 우리는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드라마 『해신』의 신라방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얼마를 갔을까. 창 밖은 어느새 세트장을 알리는 붉은 깃발들로 수놓아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나침반이 돼 우리를 안내했다.

▲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신라방 세트장의 수로시설.. 어디선가 로맨스의 두 주인공인 장보고와 정화가 나타날 것 같다. 당나라 속에 터전을 트고 살았던 당시 신라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신라방 세트장.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마을 중심을 가로지르는 수로시설이었다. 중국 당나라 시대 양주지역 운하를 재현한 것이라는 수로시설은 마치 과거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를 흐르던 물을 연상케 한다. 그것은 둥근 아치형의 돌다리와 물 위에 유유히 떠있는 조각배와 어울리며 이국적인 경관을 자아내고. 극중 장보고와 정화의 로맨스가 펼쳐진 이곳의 정취는 이뤄질 수 없는 그때의 애잔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길게 늘어선 돌담을 따라 찾은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건물들이 ‘ㄷ’자형으로 노려보듯 서있다. 극중 당나라를 상대로 신라인들의 노예밀거래를 행하고, 장보고와의 대립 및 갈등을 일으키며 거대한 재력가로 등장하는 ‘이도형 상단’은 그 이름에 걸맞게 웅장한 모습을 띄고 있다. 또한 건물의 회색과 대비되는 붉은 난간은 그것에 아름다움을 이식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끄는데. 어느 한쪽, 여타의 것들과는 다르게 붉은 빛이 감돌던 건물. 바로 장보고와 염문의 사모를 한 몸에 받으며 정화가 당나라 양주에서 운영하던 여각이다. 그것은 무수한 장식들로 치장돼있는 이곳은 처마에 매달려 있는 주홍등과 붉은 벽면으로 채색돼 한떨기의 연꽃처럼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처럼 신라방 세트장은 시대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비단, 약재 등이 널려 있는 저잣거리를 비롯해 각각의 건물들은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재구성돼 실제 중국을 거니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졌다. 너울너울 해가 저물고 짙은 어둠이 소리없이 다가올 무렵, 한편의 단꿈에서 깨어나듯 아스팔트 길 위로 나왔다. 이른 아침, 주황색 가로등만 뜸뜸이 불 밝히고 만물이 잠들어 있는 새벽. 해뜨기 직전의 날카로운 침묵은 두려움으로 변해 엄습해왔다. 그 와중에도 낡은 버스는 주위의 적막을 깨고 작은 마을을 여럿 지나 시원하게 섬을 가로지르며 질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구마을 입구 앞에 다다른 우리. ▲ 이른 새벽에 찾은 청해진 포구마을 전경.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온다.
장보고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신라 고유의 모습과 출세한 뒤 돌아와 꾸민 모습이 공존하며 시간의 간극을 보여주는 청해진 포구마을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담과 싸리나무로 빼곡히 채워진 울타리 안의 황토색 벽과 볏짚으로 씌워진 아담한 초가집은 고즈넉한 정취를 물씬 풍긴다. 군데군데 걸린 당시 촬영현장을 담은 스틸컷은 잠시 멈춰 서서 장면을 가늠해 보게 만들었다.

신라방의 시전이 그 당시 당나라와 신라 사이의 교역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포구마을의 저잣거리는 농기구, 짚신 등 신라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터전을 나타내고 있다. 그곳을 지나면 조금 전 초가집과는 사뭇 다른 무거운 기와를 짊어진 마을이 펼쳐진다. 특히 극중 장보고가 염장의 칼에 생애를 마친 본영은 그 중심에 위치하는데. 여전히 본영은 위엄을 뽐내며 소세포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산의 고택부터 보길도의 세연정과 동천석실 그리고 완도의 드라마 『해신』 세트장까지.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를 숨가쁘게 오갔다. 그리고 눈에 담았던 모든 장면들은 머릿속에서 다시 슬라이드처럼 넘어가며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폴더에 저장됐다. 시끌벅적한 서울에 머물러 거리를 외로이 거닐다보면, 간혹 그 때의 풍경과 추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만든다. 그 때가 그립게 느껴지는 건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까.

 

/글 김혜미, 정석호 기자 choco0214@

/사진 신나리, 유재동 기자 wood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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