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음악은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Moonrise 자료사진 마감 시간에 쫓기면서 기사를 마치고 지친 육체를 버스 구석자리에 옮겨 놓는다. 피곤함에 머리를 기댈 때 라디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말아 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델리 스파이스(아래 델리)의 음악이 나온다. 오늘따라 간주의 기타 소리는 왠지 자신들을 만나러 오라고 하는 듯하다. 만물이 고요한 야심한 밤, 기자는 그들을 만나러 홍대 앞 어느 카페로 가고 있다…. 저기 앞장서 계단을 올라오는 모자 쓴 최재혁(드럼)이 보인다. 동안인 그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인사를 나눈 기자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그 많은 질문 보따리의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홍대근처 ‘드럭’에서 시작했어요. 아마추어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네요.”라고 말하는 윤준호(베이스). 그와 최재혁은 한국외대 같은 과, 같은 밴드 선후배 사이였고 김민규(기타)는 처음에 홀로 방구석에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세명이 만났고 델리가 탄생했다. “그래도 그 시절 고생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저 1집 앨범을 낸 게 신기하고 좋았어요.” 입소문을 타고 「차우차우」가 뜨기 시작했고 그후 콘서트도 많이 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집 앨범 하나만으로도 당시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던 델리. 「노인구국 결사대」, 「누가 울새를 죽였나」 등 6집을 발매한 지금까지 그들의 가사와 제목은 독특하기로 유명한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발상을 얻을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평소 메모해 뒀던 게 자연스레 가사화된 게 많죠. 그렇지만 남들과 다르게 쓰는 게 좋아요. 영화가 멜로 하나만 있다면 지겹잖아요.” 또한 그들은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는데 「고백」이 바로 그 예. 1,2절과 후렴구가 말하는 화자의 성(性)이 다른 점이 독특하다. 지금은 쟁쟁한 뮤지션의 위치에 서 있는 그들. 왠지 대학생 시절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 예상과는 달리 밴드 활동을 제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최재혁은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당시 제일 걱정은 꿈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냥 어떤 의식도 없이 시험이 닥치면 공부하고 평소에는 동아리방에 있고…. 술도 엄청 마셨어요. 연애를 못해본 건 매우 아쉽네요(웃음).” 그래서 대학생 때에 꿈을 소중히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델리. “현실을 생각했으면 저도 그냥 취업하고 살았겠죠. 하지만 결국 졸업을 앞둔 4학년 때 델리가 태어났어요.” 홍대 앞에서 공연을 많이 했었다는 그들. 그 일대의 활기찬 분위기를 맘껏 느꼈을 그들의 대학문화는 어떤 개념일까. “요즘은 방송에서 뜨면 대학에서도 원하는 것 같아요. 대학문화가 대중문화와 별 차이가 없다는 거죠.” 이는 기자도 항상 고민하던 주제가 아니던가. 기자는 그동안 두 축 사이에서 어느쪽으로 방향타를 돌려야 할지 망설이던 차였다. 지향해야 할 바를 놓고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델리는 우리대학교에서도 공연을 꽤 해봤다고 한다. “college rock이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대학이 문화공간으로 이용되는 건 매우 바람직해요. 학생들에게 술보다 문화생활에 돈을 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을까. “세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이 델리의 음악이에요” 공연에서 청중과 생생히 소통할 때가 제일 좋다는 델리는 U2처럼 꾸준히 활동하는 그룹이 되고 싶단다. “다만 이전 앨범들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시간 날 때는 도시락 싸들고 공원 산책하기를 좋아한다는 델리. 그들과 함께 마신 생맥주에 취하고 그들의 매력에 또 한번 취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델리의 모습은 흔적도 없어지고 기자는 다시 차 속에 앉아 있다. 그런데 기타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칙칙한 자정 뉴스 멘트만이 어두운 소식들을 전한다. 일상에 찌든 기자에게 잠시 들러 준 델리 스파이스. 그들의 깜짝 방문에 신문사로 되돌아가는 길이 외롭지만은 않다. 오는 4월 8일 공연에는 답방 차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자도 ‘항상 엔진을 켜둔 채’로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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