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낙서를 왜 할까?
지난 1월 27일 여러 도형들과 뜻 모를 말들이 그려진 한 장의 낙서가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던 스위스의 작은 도시 다보스를 뒤흔들었다. 이 낙서가 발견된 자리의 주인은 WEF에 참석한 한 거물급 인사였고, 언론들은 ‘가장 먼저’ 심리학자에 의뢰해 낙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처럼, 자기를
드러내고 남들의 주목을 받으려는 욕구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본능입니다.
왜 사람들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안 써도 되는 댓글들을 남기고 안
만들어도 되는 홈페이지를 만드냐, 결국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의 주목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은 사람들의 반응을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회수가 대표적인 확인 지표라 할 수 있겟죠. 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도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합니다. 그때는 나름대로
타인의 주목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고 하죠.”
장 연구원은 사람들의 이러한 기대가 화장실을 비롯한 공공장소의 낙서에서 투영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떠한 내용의 낙서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또는 무엇에 억압돼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낙서처럼 사람들이 몰래 즐기는 것에는 그 사람의 내면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性)적인 측면에서 억압돼 있는 사람은 주로 음란한 낙서를, 지역감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러한 편견이 드러나는 낙서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낙서를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폭력적인 욕구를 억압당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낙서, 호모 루덴스(Homo Rudens)의 취미
하지만 최근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그동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낙서들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교과서의 과목명을 바꾸는 이른바
‘교과서 튜닝’은 그 좋은 예다. 장 연구원은 이러한 문화의 배경을 ‘불일치의 원리(Incongruity Theories)’로 설명했다.
/불일치의 원리가 나타난 '교과서 튜닝' | ||
“이름을 가지고 3행시를 지으면 색다른 재미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푸: 푸우가 뭔지 아느냐? 우: 우루사다.’라는 2행시를 볼
때 사람들은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되죠. 왜냐하면 원래 이름이 갖고 있는 뉘앙스와 2행시의 내용이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리학적
효과를 ‘불일치의 원리(Incongruity Theories)’라고 합니다.”
단어에 획 몇 개를 추가해 전혀 다른 단어를 만드는 낙서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원래의 단어와, 획을 몇 개 추가함으로써 만들어진 완전히 다른 뜻의 단어가 만들어내는 부조화성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다. 장 연구원은 “원래 인간은 재미를 추구하는 존재인 호모 루덴스(Homo Rudens)이며 이러한 특성은 인간이 끊임없이 발전해온 원동력”이라며 “낙서를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낙서의 의미를 표현했다.
낙서, 음지에서 태어났으나 이제는 양지를 지향한다
낙서는 인간의 불안을 해소시키고 억압된 내면을 드러내기도 하며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이렇듯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들 중의 하나’인 낙서. 하지만 인신공격과 같은 도가 지나친 낙서는 아무리 본능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하더라도 여전한 ‘금기’이다. 자신이 낙서를 하는 이유를 곱씹고 도를 넘지 않으려는 모두의 노력, 이것이 낙서가 우리 시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