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엘 베게트는 작품 속 부조리와 무의미성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성찰한다. /일러스트 조영현

비논리적, 혼란스러움, 허무함,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사무엘 베게트(Samuel Barclay Beckett, 1906~1989)의 희극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감정을 느끼며 당황하게 된다. 혼란스러운 시공간, 극중 인물들의 별난 모습과 그들의 무의미한 행동과 대사, 가끔 등장하는 말장난과 우스꽝스러운 상황들. 그의 작품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소설, 시, 텔레비전 드라마 등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지만 무엇보다 희극 분야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긴 베게트.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읽고, 극장에 문을 두드린다. 도대체 그의 어떠한 힘이 우리를 그렇게 매혹하고 있는 것일까. 

혼돈과 부조리

흔히 베게트는 ‘부조리극’의 대가로 불린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혼란스러운 시공간과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의 대표작인『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의 부름을 받기 위해서 막이 내릴 때까지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고도의 소년 하인은 그들에게 “오늘도 고도씨는 오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작품 속에서 고도는 등장하지 않으며, 앞으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불투명하다.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며 그들은 기약 없이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의 기다림과 그 와중에 펼쳐지는 무의미한 행동들은 극의 부조리와 비논리성을 심화시킨다.    

다른 작품『유희의 내에서는 처음부터 혼돈스러운 상황이 전개된다. 주인공이자 작품 속에서 주인공 햄은 세상은 멸망했다고 선언한 뒤, 가족과 스스로를 빈방 속으로 유폐시킨다. 그가 하는 일이란 양아들 클로브와 함께 부질없는 게임들을 즐기는 것뿐이다. 햄의 부모는 쓰레기통에 갇힌 채 햄이 주는 소량의 음식에 목숨을 연명한다. 이러한 관계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의 전복을 표현하며, 충격적으로 그려진다. 햄의 양아들로 그를 수발하는 클로브는 바깥세상으로의 탈출을 소망하지만, 정작 햄에 대한 애증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인생은 고통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고통을 겪고 있다. 블라디미르나 에스트라공은 늙고 지쳐 있으며, 에스트라공은 밤만 되면 누군가에게 얻어맞기 때문에 블라디미르의 보호가 필수적이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등장하는 포조와 그의 노예 럭키의 경우에도 2막에서는 각각 장님과 귀머거리가 돼 등장한다.

햄은 아예 사지가 절단돼 양아들 클로브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몸이다. 그의 부모는 휴지통에 갇힌 채 유일한 행복이었던 등 긁어주기도 허락받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베게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고통의 모습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그의 경험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그는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인생은 고통”이라는 명제는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있다

그렇다면 베게트의 극은 고통과 혼돈, 부조리만이 존재하는 허무하고 무의미한 작품일까. 과연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며, 말도 안 돼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벌이는 인형이나 기계에 불과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대화한다. 다른 작품『연극』에서 유골단지에 갇혀있는 세 인물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 극 속에서 암시된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죽어있는 사람들 조차도 존재 가치를 얻는 것이다.

베게트는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 인물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케 한다. 이를 통해 고통스럽고, 우스꽝스럽고, 무의미하고, 반복되는 작중 인물의 존재와 삶은 작품과 독자 속에서 살아있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누구나 삶의 무게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네 삶의 원천이다. 고통스럽고 기약 없는 현실 속에서“이젠 우리만이 홀로 밤을 기다리고, 고도를 기다린다”고 되뇌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블라디미르야말로, 무거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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