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만 되면 난 누군가를 기다리는 버릇이 있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누군가의 발자욱 수리처럼 들린다. 비오는 날은 창문을 자꾸만 연다. 창문 밑에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 기다릴 것만 같다.

기다림이란 희망이다. 설레임을 안고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 그 기다림의 시간은 바로 행복이었다. 그날이 되면 내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난 한없이 그날을 기다렸다. 내가 학교에 다닐때는 어른이 되는 날을 기다렸다. 어른이 되면 무겁게 다가올 책임감같은 건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어른이 되면 내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만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지금 내겐 그때의 기다림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난 늘 무엇니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 기다림의 시간 끝에 다가올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우리는 늘 설레이면서 기다릴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친구와의 약속, 연인과의 데이트, 가족과의 화목한 시간, 포그한 잠자리, 그리고 내일을 기다린다. 다가올 미래의 행복을 기다린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기다림에서 제외된다. 그 제외된 것들도 기다림의 시간에 다가온다. 그땐 그 시간 속에서 또다시 행복한 시간들을 꿈꾼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있기에 우린 그 아픔의 시간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린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면서도 행복해 하고, 또 기대에 부푼다. 정말로 큰 행복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은 누구일까?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결혼하는 날을 얼마나 큰 기대감으로 기다릴까? 오래도록 기다리던 아이를 임심한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을 꾸며 태어날 아이를 기다릴 것이다. 조금씩 돈을 모아 적금을 넣는 사람들은 그 적금이 다 부어질 날을 기다리며 그 돈으로 할 수 있을 일들을 그려 볼 것이다. 시험을 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초조감으로 그날을 기다릴 것이다. 이 모든 기다림은 기다림 끝이 가져다 줄 행복이리라.


몇 년을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도 자신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병실문을 나설 날을 기다릴 것이다. 자신이 살아서 병원을 나가지 못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그는 늘 병이 나아서 나갈날을 기다릴 것이다. 그가 고통을 참기 어려워 그 고통이 사라지는 죽음의 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으리다. 그는 그 죽음의 시간이 육체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침이 되어 저역을 기다리는 것은 저녁의 포근함을 생각하기 때문이요, 저녁이 되어 아침을 기다리는 것은 아침의 새로움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2005년이 되기 전 우린 2005년 새해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2005년 새해가 밝으면 이 세상이 다시 열리기라도 하듯 그 새해를 기다렸다. 그 2005년 새해가 밝았지만 새해에 맞이한 태양은 어느날과 다름없는 똑같은 해였고, 그날 또한 똑같은 하루가 지났다. 2005년 한해도 그다지 별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한 해가 지났다. 그러나 우린늘 새해가 밝아오길 기다린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주는 기대감 때문에.


3월이 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06학번이 입학했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해 본다. 오늘도 난 올해는 더 나은 한 해가 되리란 기대감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우린 모두 앞으로의 시간이 가져다 줄 행복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이 생각만큼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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