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흘러, 지난 1년 동안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한 해가 가고 새해의 아침이 밝았다. 모든 사람들의 소망을 담아 새로 시작하는 2006년은 바로 병술년 개의 해다. 이런 2006년을 맞아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58년 개띠’들이다. ‘58년 개띠’는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돼 왔다. 신문이나 뉴스에서도 수없이 언급된 것은 물론이고, ‘58년 개띠’를 제목으로 한 시집이나 노래도 있다. 사회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도, 58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58 개띠’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왜, 무엇이 ‘58년 개띠’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일까?

 

   
▲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전쟁으로 폐허가 돼버린 나라를 복구하는 데 여념이 없던 이 시기가 바로 58년 개띠들이 태어나고 자랐던 때다. 이런 환경에서 이들은 그들과 비슷한 또래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왔다. 58년생인 김윤식씨(48)는 “58년 개띠들의 가장 큰 특징은 숨가쁜 경제와 산업성장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졈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58년 개띠들 중에는 흔히 ‘공돌이, 공순이’ 등으로 불리며 산업전선에서 맹활약했던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후 IMF 외환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많이 퇴출된 세대도 대부분 58년 개띠들이다. “우리 또래는 대부분 당시 회사에서 과장에서 부장까지의 직책을 하다 대부분 그만 둔 경우가 많다”는 58년생 유남선(48)씨의 말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중심에 서 있던 58년 개띠들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58년 개띠의 특성은 비단 경제발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본고사를 준비하던 중학교 3학년때 고등학교 입학제도가 연합고사제로 바뀌었으며, 대학 입시에서는 예비고사와 본고사에서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77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조명수씨(48)는 “나름대로 높고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다는 일종의 자부심 등이 우리 세대에게 후배 세대들보다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이들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물결 속에서 대학시절을 보내고, 일산, 분당 등과 같은 신도시가 58년 개띠들의 내집마련 시기에 세워졌다. 또 최근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를 책임지는 소위 ‘햄버거 세대’로 불리는 등의 상황들이 58년 개띠들로 하여금 우리 사회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특성과 연대의식을 가지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58년 개띠들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다른 세대와는 구별되는 그들만의 특징과 유대를 가지며 활동하고 있다. “아마 20년 뒤, 58년생 개띠들은 노인 문제에서도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최준기씨(48)의 농담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도 이들의 역할과 이들에게 모아지는 관심은 여전할 것 같다. 새로 시작하는 2006년 개의 해를 맞아, 58년생 개띠들이 어떤 일들을 맡고 해낼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