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슬라 아트월드를 다녀와서

“순수미술의 위기다, 무용이나 문학도 마찬가지로 대중이 보기에 난해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다. 이런 순수미술의 위기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고자 했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위치한 ‘하슬라 아트월드(아래 하슬라)’. 이곳의 대표 최옥영씨의 설명이다. 점점 자극적이고 향락적인 사회로의 변화는 순수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순수 예술 분야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곳이 바로 하슬라다.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 작품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3만 3천평 자체가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는 이 작품 안으로 우리 함께 산책해보는 건 어떨까?

긴 산책로의 시작은 바로 ‘병따개 에버싸이클’이다. 길게 내려오는 이 작품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 내림을 표현한 것이다. 복잡하고 지겨운 힘들었던 세상사들은 잠시 뒤로 미뤄버리고 이 비를 뚫고 한 발 한 발 걸으며 하슬라의 평화로운 여정은 시작된다. 총 300여종의 야생식물들은 여기저기 한데 어우러진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아니 느낄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색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면 자연 속 곳곳에 숨어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느 문화공간처럼 작품을 떡 하니 전시해놓고 푯말까지 세워가며 내세우지 않았다. 이는 자연이 훼손되기를 꺼려한 이유도 있지만 나만의 작품 이해보다는 푯말에 먼저 눈이 가는 사람들, 작품보다는 언어로 먼저 이해하는 것에 대한 예술가의 안타까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길이 흐르는 모양을 본 따서 만든 소나무 정원, 기린 모양의 나무 곳곳에 바다를 향해 놓여있는 의자들까지 세심하고 소박한 작품들에 빠져보자. 어쩌면 조금은 숨가쁜 산행길. 하지만 숨이 차고 힘이 들 때면 중간중간 언제든 ‘뒤’를 돌아보길 권한다. 탁 트인 넓은 바다가 한 눈에 쏙!그 무한한 에너지에, 파란 빛깔의 그 평화로움에 자신도 모르게 바다의 에너지로 힘든게 싸악 가신다. 그렇게 조금을 더 가다보면 바로 하슬라의 중심인 ‘하늘 전망대와 시간의 광장’에 다다르게 된다. 하늘 전망대는 하늘과 바다, 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하슬라에서 결코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다른 곳에서와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다. 바람을 빨아들여서 내보낼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웅장한 돔형식의 특징 때문인지 여느 곳보다 ‘바람’이 조금은 강도가 쎈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다와 산의 에너지를 동시에 받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중간에 우뚝 솟아 있는 소나무의 웅장함 때문일까. 단지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서 이곳의 거대한 에너지에 압도되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넋이 빠져 한참을 바다를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다.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는 물론 하늘빛 구름과 초록빛 산과 나무까지 이 자연들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진다. 시간은 멈춰버린 것 같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감미로운 음악과 잔잔한 파도만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말하는 ‘지상낙원’이라는 곳은 아마 여기와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액자 안 한폭의 그림이 되고 있었다. 이 그림을 마음 한 켠 깊은 곳에 넣어두고 간 곳은 바로 ‘시간의 광장’이다. 커다란 자연 해시계와 시간의 터널이 있는 이곳은          하늘 전망대의 멈춰버린 시간을 돌려주는 듯하다. 시간의 터널 속은 매우 어둡다. 내 발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울림에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참을 걷다가 보면 곧 한줄기 밝은 빛이 보이고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밝은 빛, 바로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시간의 터널을 만든 예술가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갑갑하게 어두운 마음으로 꽉꽉 채워져 있는 마음에 조금씩 미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조금은 평안해진다.

이외에도 강릉지역에만 자생하는 오죽과 3년 이상을 건조시킨 쪽동백나무(개박달나무, 개똥나무라고도 함)를 깎아서 제작하여 변색, 갈라짐, 비틀림이 없는 다양한 솟대가 전시된 솟대 박물관, 예술가가 직접 디자인한 둥근 구 형태의 구조물 내부에 미술 교보재들이 공중에 매달려 설치돼 있는 기능성 예술공간인 ‘교보재 갤러리’ 그리고 상쾌한 숲의 향기와 맑은 시냇물의 쫄쫄쫄 거림까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논밭정원, 습지정원 등의 공간까지. 예술이 녹아있는 자연 안에서의 산책은 자연의 편안함과 예술의 신비로움이 합쳐져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인위적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 곳의 예술과 자연은 완벽히 하나가 되었다. 예술은 결코 먼 곳에 있는 어려운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자연 안에서 예술 작품들과 함께 숨쉬고 있는 하슬라. 떠나는 길을 반겨주는 하슬라 작가들이 확대, 재해석한 하슬라의 상징인 발렌도르프 비너스를 뒤로한채 아쉬움을 남기고 미뤄놨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가끔은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각박한 세상의 어지러움과 사람들에 치였다면 대지예술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하슬라에서 자연과 예술의 에너지에 흠뻑 취해보는 것도 좋을 듯.

 /윤현주 기자 gksmf07@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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