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오늘 너무 멋지신데요?” 교수님이 멋쩍은 미소를 짓는 순간 나의 검지 손가락은 재빠르게 셔터를 끊는다. 취재원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거기에 독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미적인 요소까지 고려하며 사진을 찍어야 한다.


사진부 정기자가 나 혼자인 덕에 이번 학기 거의 스무명남짓의 학내외 저명인사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중요한 인터뷰가 있을 때, 혹은 장거리 취재를 갈 때마다 길었던 수염을 그대로 놔둔다. 혹자는 나의 수염을 보며 지저분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데 굳이 왜 기르냐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곤 한다.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수염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수염은 사람의 얼굴에 있어서 옷과 같은 것이다. 얼굴 위에 수염이라는 옷을 입음으로써 나름대로 나만의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헤어스타일이 사람의 이미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따라서 수염을 기른다 함은 헤어스타일 이외에 나의 이미지를 하나 더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내가 수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남성 연예인들의 멋을 위한 수단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다. 수많은 사진취재를 하면서 얻은 한가지 교훈이 있다면, 좋은 사진은 취재원과의 소통의 정도에 비례해서 나온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취재원들은 좋은 이미지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도 카메라 앞에서 본연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내 생각에 크게 두가지 이유인것 같다.

첫째는 카메라 앞에서 익숙지 않은 낯설음 때문에,

둘째는 나이 어린 학보사 사진기자기 때문에 ‘사진을 잘 못찍을 것이다’라는 편견이 작용해서일 것이다.


수염이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이러한 두가지 문제점을 동시에 해결케 해준다. 실제로 보통 사람들이 ‘포토그래퍼’라고 하면 떠올릴만한 기표들, 가령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수염 등을 연출해 보았더니 대번에 취재원들의 태도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카멜레온이 생존을 위해 보호색을 갖듯, 나 또한 수염을 통해 ‘있어 보이는 포토그래퍼’로 둔갑할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수염을 휘날리며 백양로를 뛰어 다닌다. 수많은 취재원을 만나 한시간 동안 삼백번 이상 셔터를 끊으며 쉼없이 그들만의 코드를 잡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아버지뻘 되는 취재원에게 웃어보라고, 나무에 기대어도보라며 귀찮게 이것저것 색다른 포즈를 요구한다. 아마 취재원들은 ‘이 친구가 정말 사진쫌 찍는 청년이겠으려니’ 하고 나의 요구에 따라 충실하게 움직여 주신다. 셔터는 시간을 끊고, 그 순간은 기록된다. 그럼 내가 수염으로 취재원들을 기만한걸까? 그렇지 않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사진 또한 ‘있어 보이기’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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