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태극기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물론 ‘우리나라 국기도 제대로 못 그리겠냐’며 큰소리를 치고 쉽게 중앙의 태극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잠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네 귀퉁이에 있는 괘를 그릴 때는 선뜻 자신 있게 긋지 못할 것이다. 단지 검은 선 몇 개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네 개의 괘. 이들은 바로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하는 주역(周易)의 중요 4괘다. 이처럼 우리와 주역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64괘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변화함에는 태극(太極)이 있고, 이것이 음양(陰陽)을 드러내고, 음양이 사상(四象)을 드러내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는다.


즉, 주역의 괘는 태극에서 음양, 사상, 팔괘를 거쳐서 만들어진 것으로 모두 64개이다. 인식할 수 없는 대상인 태극은 절대적인 진리를 뜻한다. 이러한 태극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므로 그 원리를 음과 양으로 설명하게 된다. 양은 적극적이고, 음은 소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음양이 분화가 돼 사상이 생겨나는데 매우 적극적인 것과 약간 적극적인 것, 약간 소극적인 것과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네 가지의 경우를 바로 ‘사상(四像)’이라 하고 그 성격에 맞추어 태양, 소음, 소양, 태음으로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사상을 다시 세분화 한 것이 바로 팔괘다. 태양위에 양이 생겨난 것과 음이 생겨난 것, 소음에서 다시 양이 생겨난 것과 음이 생겨난 것 등 모두 여덟 개의 부호인 팔괘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팔괘의 이름을 각각 건(乾,하늘), 태(兌,못), 리(離,불), 진(震,우뢰), 손(巽,바람), 감(坎,물), 간(艮,산), 곤(坤,땅)이라 한다. 즉 음과 양이 계속 중첩이 되면서 팔괘가 만들어지고 팔괘가 각각 중복되어 오늘날 주역에서 분류하고 있는 64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좌측 하단 사진 참고)

주역의 구성 원리는 오늘날의 이진수와 같은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훨씬 더 많은 괘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64개의 괘에서 그친 것일까? 이에 대해 철학과 김우형 강사는 “물론 훨씬 더 많은 수의 괘를 만들 수 있지만 64개의 괘만으로도 일반적인 현상을 충분히 설명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64괘는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기록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주역은 단지 점서(占書)에 불과한가?


소설 「화랑의 후예」 속에서 모포자락 속에 항상 주역을 가지고 다니는 황후암 6대손 황진사는 시대착오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전근대적인 인물로 풍자되고 있다. 하지만 황진사의 구시대적인 모습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주역마저도 시대착오적인 미신인 것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역을 점서(占書)라고 알고 있다. 물론 점서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주역은 시경, 서경과 함께 유교경전의 하나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역이 점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단지 미신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김 강사는 “주역은 음과 양으로 대변되는 부호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수학적 배합으로, 일종의 확률을 갖고 있는 원시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며 주역이 일반적인 역술서와 다름을 알려줬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8괘 각각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요소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중첩돼 이뤄진 64괘는 변화무쌍한 세계의 모습을 일정한 유형별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동전 세 개로 괘 뽑아보기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쉽게 괘를 뽑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동전 세 개를 손에 쥐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잘 흔들어 바닥에 던진다. 그러면 세 개의 동전이 1)모두 앞면, 2)두 개가 앞면 하나가 뒷면, 3)하나가 앞면 두 개가 뒷면, 4)세 개 모두 뒷면의 네 가지의 경우가 나올 수 있다. 총 여섯 번을 던지는데 각각의 경우에 대해 1)의 경우에는 태양으로 양의 기호를, 2)는 소음으로 음의 기호, 3)은 소양으로 양의 기호, 4)는 태음으로 음의 기호를 그리면 된다. 총 여섯 번을 던지면서 차례대로 아래에서 위로 적어나간다. 최종적으로 나온 괘는 64개의 괘중 하나가 되는데 이에 해당하는 괘의 풀이를 읽고 상황에 따라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나 대처한 결과에 대한 길흉 제시 등으로 해석을 가하면 된다.(괘에 대한 해석은 이기동 저, 『하늘의 뜻을 묻다』(2005) 참고)

고전이 고전일 수 있는 까닭은 그 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시공을 넘어 공유되기 때문이다. 한국외대 철학과 박정근 교수는 “주역은 삶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에 응답하고 있기 때문에 주역을 읽는 사람은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며 개인과 개인의 세계에 대해 풀이해 주고 있는 주역의 의미를 높이 사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히 정해져 있는 미래를 엿보는 것이 아니라 괘가 좋든 나쁘든 간에 모든 것은 ‘성실한 삶’이라는 상식적인 진리가 전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역은 단순히 점서가 아니라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경전으로 거듭나게 된다. 자, 동전 세 개로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최종혁 기자

bokusip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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