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광화문, 광화문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This stop is Kwanghwamo on…” 귓바퀴를 맴도는 안내멘트를 곱씹으며 읽고 있던 책을 덮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으로 향했다. 방금 전 읽고 있던 책 속의 배경이 지하철 출입구를 빠져나오는 동안 머릿속에 그려진다. 정말 있을까?

세종문화회관 앞 약속 시간 30분 전, 다시금 책을 펼쳤다. ‘교보문고로 통하는 지하도를 건너서 광화문을 바라보며 걷다가 한국일보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오산이’가 보였다. 지하철에서부터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이 책은 바로 『바이올렛』. 그리고 30분 후에 만나게 될 사람은 바로 이 책의 저자 신경숙. 그녀와 함께 『바이올렛』의 주인공 오산이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자.


꽃을 돌볼 여종업원 구함


한껏 치솟은 가을하늘을 신경숙씨와 함께 머리에 이고 세종문화회관 옆길을 따라가자 지하철역을 빠져 나오면서 상상했던 장면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오산이가 전화통화를 하던 공중전화 부스 맞은편에는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꽃을 돌볼 여종업원 구함’이라는 문장이 쓰여 진 흰 종이가 유리문에 붙어 있었을 화원이 있었다. “제가 상상한 건 꽃들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한 밤중의 셔터가 내려진 화원이었어요”라는 신경숙씨. 비록 밝은 대낮에 찾은 화원이라 그 같은 감정은 느낄 수 없었지만 소설 속에서처럼 이곳은 앞만 보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향긋한 꽃내음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릴 수 있게 만드는 곳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의 주차장과 옆벽을 마주하고 있는 이 거리에서 잠시 불현듯 만나지는 이 화원은 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자동차 소리를 잊게 해주는 장소이다.


 

“이 화원은 미나리지, 농원과 더불어 자연을 상징하는 원초적인 공간이에요”라는 신경숙씨의 말처럼 이 꽃집은 어린 오산이가 살았던 시골의 미나리지를 도시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화원과 구파발에 위치한 농원은 도시의 폭력성에 의해 상처 입은 오산이를 치유해 주는 재생의 공간이다. ‘아! 맞다’, 기자가 “잠깐만요”하고 화원으로 뛰어가 “혹시 바이올렛 있나요?”라고 물어보았지만 아쉽게도 바이올렛은 계절 꽃이라 지금은 구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2005년 가을,

삼청동 거리엔 많은 은행잎이 내렸습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오산이가 살았던 삼청동의 ‘길다란 방’. 그 집에서부터 좀 전의 화원까지 오산이가 매일 걸어 다녔을 삼청동 길엔 샛노란 은행잎들이 예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오산이의 ‘길다란 방’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보세 가게와 찻집, 조그마한 갤러리가 쉴 새 없이 늘어서 있었다. “예전에 내가 살 땐 차가 이렇게 많이 다니지도 않았고 이런 가게도 전혀 없었어요”라며 지난 2001년에 출간된 『바이올렛』의 배경과 비교해 너무나 변해버린 거리에 신경숙씨는 잠시 아쉬움을 표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이거 너무 예쁘지 않아요?”라며 기자를 불러 세우며 수제 인형이 전시된 가게 창문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는 마치 스물 세 살의 오산이처럼 너무나 순수한 여자였다.

따갑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은행잎의 눈부심을 따라 도착한 오산이가 세 들어 살던 ‘길다란 방’. 신경숙씨는 “예전엔 소설 속에서처럼 1층엔 상을 파는 가게였어요”라고 했다. 지금은 식당이 들어서 있어 아쉬웠지만 오산이가 이층 창문을 통해 내다보던 은행나무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길다란 방’이었을까? 남편의 폭력에 쫓겨 오산이가 사는 이층으로 도망쳤던 주인집 여자처럼 남성을 상징하는 ‘길다란 방’이 앞으로 오산이가 남성으로부터 겪게 될 상처를 예견했던 것은 아닐런지.

 

그 남자, 그 여자


오산이에게 상처를 안겨다준 사진기자. 바이올렛을 찍기 위해 꽃집에 들른 그는 오산이가 전해주는 보랏빛 바이올렛의 아름다움은 발견하지 못한 채 오산이에게 렌즈의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오산이에게 너무나 쉽게 고백한다. 그녀가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을 모른 채. 


나, 할 말이 있어.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번 그놈의 바이올렛 때문에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알아? 당신 내 카메라 바라보느라 눈 내리깔고 있을 때, 이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눈썹도 있구나, 내내 생각했지. 내 마음 몰랐지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끼는 오산이는 그의 이 말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고서 수 십 번이고 되네이면서 그를 향한 욕망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사진기자는 그의 회사로 찾아온 오산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 왜냐면 단지 그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오산이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가 바이올렛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사진기자가 일하는 곳은 소설 속 배경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맡은 편에 위치한 흥국생명 빌딩. 오산이는 그 건물을 올려다보며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을 것이다. “오산이는 당시 공터였던 박물관이 들어선 이곳을 그가 내려다보기라도 하듯 바이올렛을 심었죠”라고 신경숙씨는 말한다.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 몰랐던 그 남자, 그 여자.

이것이 전부다. 삼청동의 ‘길다란 방’에서부터 사진기자가 일하는 ‘높은 빌딩’까지가 『바이올렛』의 배경이자 오산이의 동선은 여기까지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오산이는 마치 미로를 통과하듯 이동하면서 자칫하면 길을 잃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앞만 보고 걸어가면 내 옆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이 지나가는지 알 수 없기 마련이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때로는 낯설게 바라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소설의 중심배경이 서울의 한 가운데인 것은 “사람들이 서울에 대해 애정을 가졌으면 해요”라는 신경숙씨의 말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지금처럼 독자가 책을 읽고 쉽게 책 속의 배경을 찾아 가 볼 수 있듯이 그녀는 의도적으로 소설의 배경을 서울의 가장 중심으로 선택한 것이다.

“모두가 다 변했어요”라며 『바이올렛』을 배경을 4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돌아보고 난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속상하지는 않아요. 도시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그만큼 살아 숨 쉬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런데 서울은 너무나 빨리 변해요. 조금만 천천히 변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 조금만 천천히.

/글 최종혁 기자 bokusipo@yonsei.ac.kr

/사진 위정호 기자 maksanno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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