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신방.03)
 올해, 2005년은 광복 60주년이다. 지난 8월, 여느 광복절보다도 올해의 기념비적 측면을 목격한 나로서는 과연 60주년의 특수한 의미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하다. 이는 자연히 과거 59주년과는 어떻게 다르며, 앞으로 다가올 61년, 70년, 100년의 의미와 어떤 차이와 유사점을 공유할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기억’과 ‘기념’의 본질은 단순한 숫자의 기술적인 면에 기초한 기계적인 기억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고민과 지속적인 문제의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유별남의 출처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지난 2005년 7월 25일부터 8월 11일까지 총 17일간, 문화관광부의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쿠바에 살고 있는 한국인 이민자의 후손들과 이민사를 조사하고 돌아왔다. 흔히들 쿠바라고 하면 카리브 해에 유유히 떠있는 남국의 이미지 내지는 체 게바라와 같은 낭만화된 혁명의 표상, 혹은 카스트로의 장기 독재 집권, 과거 핵 미사일 위기와 같은 냉전의 대립이 점철된 곳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처럼 극단화된 이미지의 섬나라에 한국인들이 80년 전부터 살고 있다는 사실은 쉽사리 기억되지 않는다. 그 곳의 한인들은 일종의 노예이민과 같은 경로를 통해 멕시코로 이주, 그 중의 일부가 쿠바로 유입되었다. 그 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민 4,5세대로 성장, 현지인과의 결혼을 통해 외형적인 측면은 현지인과 상당부분 동화되었지만, 그들의 ‘이식된’ 정체성 측면은 쉽게 동화를 거부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성별이나 연령을 막론하고, 한국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때로는 근거 없을 정도로 낭만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생전 본적도, 방문해 본적도 없는 ‘고국’을 ‘고국’이라 만들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분리와 소외에 대한 현실 조건적 측면에서 찾고자 한다.

카리브 해의 조그만 섬나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흘러 들어온 그들의 동양적 외모와 뿌리의 이질성은 쿠바 사회에서 그들을 소수이자 약자의 위치로 정형화시킨다. 이처럼 사회경제적 자본이 쿠바 현지인들에 비해 전무했기에, 그들은 모종의 '뿌리'와 같은 상상의 공동체를 결집시켜 현실적인 삶의 영역으로 이끌어 냈다. 예를 들어 한인끼리 함께 거주하며, 고국의 중요한 의식들을 집행하고 고국에 독립 후원금을 송금하는 것이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처럼 그들이 생각하는 고국과 뿌리는 강하게 생존적 개념과 밀착되어 있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보호아래 살아가는 한국인들, 특히 그들 중 지식인들은 민족주의를 가리켜 정치적으로 다소 불순하고, 지적으로 떨어지는 인식으로 개념화하곤 한다. 하지만 쿠바에 살고 있는, 다시 말해 고국과 같은 정체성의 보호가 전무한 그곳의 한인들은 삶 전반에 걸쳐 한국이라는 무형의 정체성에 많은 부분 의지해 왔다. 머릿속의 상상이 더 이상 상상의 영역만이 아니라 너무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의 영역이 된 셈이다.

올해는 광복 60주년이다. 정부에서 이러한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였다는 것은 분명 지난 세월 국가적 정체성이 국가의 구성원인 개인들에게 어떤 '확실한' 보호를 제공해 주지 못함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동시에 그만큼 한국의 경제적 진보와 국가적 영향력이 과거에 소리 없이 지구 반대편으로 흘러 들어간 한인들에게 일종의 연결고리를 제공하려는 의지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쿠바의 한인의 사례에서 말하고 있듯이, 한 국가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동의여부는 절대 확정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때로는 그 농도가 짙어질 수도, 그 반대로 묽어질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더욱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며, 앞으로 그 동의 여부를 더 발전적으로 엮어 가길 원한다면 이에 대한 명확한 문제의식과 당위성, 그리고 인식의 세련화가 필요할 테다. 이것이 다음해, 아니 광복 100, 200주년을 맞이할 때 우리가 점검해 봐야 하는 사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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