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걸음마를 디딘 한국 여자야구, 그 현장을 찾아가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중 하나인 야구. 그러나 왠일인지 여자와는 그동안 영 인연이 없었다. 지난 세월 야구장에서 여자들은 치어리더이거나 관중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원영신 교수(교육대·스포츠사회학)는 “야구는 던지기와 달리기, 타격 등 여러가지 복합적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여자가 하기 힘든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야구는 남자만 하는 운동’이라는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 여자야구단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태초에 비밀리에가 있었다’ 국내 최초의 여자야구단 ‘비밀리엷는 지난 2004년 3월 국내 여자야구선수 1호 안향미씨에 의해 창단됐다. 안씨는 우연찮은 계기로 학창시절 야구부에 들어가게 됐다. 아무리 타고난 운동감각과 여자로서는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인 안씨라지만 힘깨나 쓴다하는 남자들 틈에서 살아남을 재간은 없었다. 여자야구선수 1호라는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덕수정보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오라는 대학이나 프로팀은 전무했다. 결국 야구를 하고 싶어서 일본까지 건너가 사회인 야구팀에서 2년여간 뛰었다. 평일에는 돈을 벌고 주말에는 야구를 하는 힘겨운 생활이 계속됐다. 그러다가 한국에도 제대로 된 여자야구팀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게 됐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결국 귀국한다. 비밀리에는 국내 최초 여자야구단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한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실력은 형편없었다. 왕년에 소프트볼, 태권도, 축구 등 각종 운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소용없었다. 지난 2004년 일본과의 여자야구 월드시리즈 경기에선 무려 53:0이란 참혹한 스코어로 패배했다. 여자사회인야구팀이 73개나 있는 일본과 상대가 안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밀리에는 유명해졌지만 다른 팀들과의 선의의 경쟁이 없는 한 한국 여자야구의 성장은 요원했다. 그러던 어느날 안씨는 비밀리에를 ‘나인빅스’, ‘서울드림여자야구단’(아래 드림야구단) 등 여러 팀으로 나누는 모험을 벌인다. 여자야구 하면 비밀리에로 굳어져 경쟁이 사라질까봐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팀보다는 여자야구계 전체의 발전을 생각한 결정이었다. 이후 비밀리에가 사라진 여자야구계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이전보다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 ‘빈’ 등 다른 팀들이 많이 생겨나고 각자의 실력도 평준화돼 가까운 미래에 자체적인 여자야구리그 출범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Baseball Is My Life! 지난 10월 9일 찾아간 성남시 소재의 한 운동장. 드림야구단의 훈련 장소다. 매주 주말이 훈련일인데 운동장 구하기가 워낙 힘들다보니 훈련 장소 변경이 잦다고 한다. 하지만 개성으로 똘똘 뭉친 멤버들 덕분에 훈련 분위기는 항상 유쾌하다. 안향미씨가 “너같은 애들만 있으면 남자들과도 한번 해볼 만 하다”고 평가하는 강효람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드림야구단의 에이스. 작은 체구지만 빠른 발과 민첩한 수비가 단연 돋보인다. 한편 지난 2004년 슬라이딩을 하다가 바깥 발목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도 계속 그라운드에 나오고 있는 강보형씨는 틈만 나면 “긴장 좀 하자!”라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화이팅을 외치는 분위기 메이커. 유명야구해설가 하일성씨의 조카인 탓에 어릴 때부터 야구에 관심이 많았다는 강보형씨는 아직 회복이 더딘 탓에 시합이 있으면 주로 주루코치로 활동한다. 여자야구선수들의 직업이나 나이 등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대학생, 주부, 회사원을 모두 망라하며 심지어 개중에는 야구에 너무 미치는 바람에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둔 경우도 더러 있다. 그야말로 야생야사,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산다. 이튿날인 지난 10월 10일에는 상계동 소재의 육군 제2818부대 운동장에서 경찰팀인 포돌이 야구단과의 친선경기가 있었다. 아직 여자야구팀이 몇 안돼 시합은 주로 남자야구팀과 할 수밖에 없다. 기량차이때문에 남자팀과의 경기때는 남자선수 몇명이 ‘용병’으로 출전하거나 남자팀 선수들은 도루를 못한다든가 하는 규칙을 두곤 한다. 이날 경기에서 드림여자야구단은 희망을 봤다. 비록 졌지만 대등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한편 이날 경기에서 오랜만에 그라운드에 선 안향미씨는 2안타를 쳐내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세상은 넒고 할 일은 많다. 내년 열리는 여자야구 월드시리즈에서는 일본, 미국 등을 모두 꺾고 우승하는 그날까지 비밀리에, 그녀들의 당찬 도전은 계속된다. /글 정진환 기자 anelka@yonsei.ac.kr /사진 신나리 기자 journar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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