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북핵 6자 회담 1단계 회의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이번 회담에 먹구름이 낀 것은 지난 10일 북한이 자국 기업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자산동결조치와 위조달러 공모, 마카오 중국계 은행 돈세탁 주장 등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부터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반발에 대해서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정략적 수단이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북한을 적대 세력이 아닌 동반자로 여긴다면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 제재 압박에 대해서 먼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9월 북한이 마카오의 방코 델타아시아 은행을 통해 위조달러 지폐 유통 및 마약 불법 거래 대금을 세탁했다는 명목으로 미국 금융기관들이 이 은행과 거래를 일절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북한을 옥죄었다. 또한 미국은 북한이 IMF, IBRD, ADB 등의 국제 금융기구에 가입하여 차관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은 다양하고도 지속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대한 무역 제재 조치를 강화시켜왔다. 평소 미국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우려하는 태도를 취하지만, 사실 북한 내에서 인권이 침해받는 이유는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와 무관하지 않다. 먹을 것이 모자라 탈북한 사람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북한 내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이유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북한의 체제 내부 모순과 함께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로 인한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 역시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차후 열리게 될 북핵 6자 회담 2단계 회의가 성공하기 바란다면 북한에 대한 접근 방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이 김태식 신임 주미 대사에게 신임장을 주면서 밝힌 대로 ‘기독교인으로서 북한 주민에 대한 강한 연민의 정’을 갖고 있다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그만둬야 함은 물론 회담 몇 일전 브라질에서 있었던 부시 대통령의 ‘폭군’ 발언과 같은 언어 사용도 재발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북핵 6자 회담 1단계 회의가 의장성명만 채택한 채 2단계 회의의 일정마저 잡지 못하고 폐회됐지만 그나마 북한이 이른바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할 양자 채널을 미국으로부터 확보한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지금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 재건을 위한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라고 본다. 이러한 바탕에서 북핵 6자 회담 2단계 회의가 속히 개최돼 9ㆍ19 공동성명에 따른 구체적 이행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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