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기자인 나는 지난 1년 동안 학내 각종 문화행사부터 공연 관람, 영화감독, 가수 인터뷰까지, 남들이 보기에 꽤 ‘부러운’ 취재를 해왔다. 하지만 뜻밖에도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이런 것들이 아니다. 바로 지난 1523호의 일명 ‘회색할머니’기사다. 이 기사에 아직 못다한 얘기가 남아있음을 독자들은 알고 있을까. 
취재를 위해 평소 할머니가 자주 계시는 굴다리 밑에서부터 전철역까지 몇 번을 왔다갔다, 얼마나 허탕을 쳤는지 모른다. 사실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는 건 그 사실 자체로도 충분히 떨리는 일이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할머니에게 맞는 것이 무서울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안계셨으면’하는 마음이 꿈틀꿈틀대는건 오히려 자연스러웠으리라. 하지만 기사 마감 날은 다가오고, 나는 결국 할머니에게 대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며칠만에 나타나신 할머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고향은 어디냐는 질문에서부터 경찰들 단속에 관한 다소 무거운 얘기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봤지만 그런 것에 얼굴 빨개질 틈이 없었다.
기사가 나간 후, 반응은 생각보다 컸다. 여기저기 수업시간에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고 「연세춘추」 자유게시판에도 글이 올라왔으며 조회수 또한 지금까지 중 최고였다. 소외되고 지친 사람들을 가십거리로 다룬 것이 아니냐는 입장과 할머니를 너무 미화했다는 입장의 따끔한 독자의 의견들. 물론 기사 의도는 회색할머니를 미화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나역시 할머니의 따끔한 손맛을 경험했기에 아침마다 피해 다니곤 했던 할머니를 미화할 필요는 없었다. 또한 소외된 사람들을 다뤄 한 번 주목을 받아보자는 의도 역시 결코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다. 할머니는 누구며 왜 이렇게 학생들을 괴롭(?)히는지. 나 뿐만 아니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그분을 궁금해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름만 들어도 거창한 문화행사보다 내 주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독자들 또한 그것을 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렵게 용기를 내어 할머니와 대화를 했고 나는 보고 들은 그대로 기사를 작성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많은 여론 속에서 연세춘추 기자로서 내 기사가 독자들의 관심과 비판을 받았다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바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은 기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만 그에 따른 비판 역시 더 기자를 채찍질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많은 관심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고마운 독자들에게 차마 못했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독자들 또한 기자의 ‘아직 못다한 이야기’를 통해 기사의 의도를 한 번 더 생각해준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