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동문(철학·82)을 만나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늦은 시작일지도 모르나 허 동문의 영화계 진출은 가히 대 성공적이었다. 지난 1993년
개봉한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조감독을 맡아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5년 후 『8월의 크리스마스』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한다. 이후에
선보인 『봄날은 간다』 또한 큰 사랑을 받으며 그만의 시각으로 그만의 느낌을 관객들에게 공감시켜 ‘허진호 영화’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영화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주변의 일상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대표적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애, 사랑 얘기를 주로 다룬다”는
그의 영화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무심한 듯 섬세하게 그려내는 삶의 풍경들, 그리고 대사 사용의 절제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숨죽여 빠져들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직접 대사로 전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며 “말하지 않고 전달하는 것이 더 재밌다”는 말처럼 유난히도
적은 대사 양 때문일까?
지난 9월에 개봉한 배용준, 손예진 주연의 ‘외출’은 허 동문의 전작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라 평가되고 있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며 허 동문 역시 “기존의 작품들의 일상성에서 벗어난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외출』을 소개했다. 『외출』은 지난 10월 말 역대 일본 개봉 한국영화 중 최고 흥행수입인 23억엔(230억원)을 기록했고 중국에서도 20여개 도시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허 동문은 오는 11일 배용준과 함께 프로모션 활동을 위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의 ‘영화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철학과 동기인 음악감독 조성우 동문(철학 ·82)이다.
그의 모든 작품에 음악 작업을 맡아왔던 조 동문은 학창시절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하는 등 음악에 관심을 보여 왔지만 그 역시 허 동문과 마찬가지로
철학을 계속 공부해왔다. 그러던 중 허 동문과 함께 영화에 뛰어들어 지금은 영화음악계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제도 밤새 같이
술을 마셨다”며 “음악 뿐만 아니라 삶 이야기를 함께 하는 친구다”라는 그의 말에서 일하는 동료로서, 그리고 오랜 친구로서 그들의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언제가 가장 힘드냐는 기자의 질문에 “촬영할 때는 항상 힘들다”고 멋쩍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허 동문. “내 재능에
회의를 느낄 때 힘들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이나 느낌들을 나만의 시선을 담아 창작하는 것이 좋다”며 웃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천직이
‘영화’임을 느낄 수 있었다.
느낌이 살아있는 그의 영화처럼 은은하게 울리는 그의 조용한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허진호
감독. 그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 윤현주 기자 gksmf07@
/사진 위정호 기자 maksann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