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혜석, 윤심덕, 전헤린

 

 

 

 

 

 

 

 

 

책장에서 우연히 꺼낸 엄마의 책, 전혜린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전혜린에게 빠져들었다’는 사람들의 글들을 블로그나 싸이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전혜린이 생존했던 1960년대부터 강한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그녀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삶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주체할 수 없는 지적 욕망, 기괴한 삶에 이어진 수수께끼 같은 죽음은 그녀를 하나의 전설로 남게 했다. 전혜린(1934~1965), 공인되고 있는 그녀의 직업은 수필가이자 번역가이지만, 실상 우리에게 각인돼 있는 전혜린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경기여고, 서울 법대라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길을 밟아온 그녀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법과 공부를 견디지 못하고 한국여성 최초로 독일유학을 다녀온다. 귀국 후 서울대, 성균관대와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했다. 이는 당시 여성에게 보수적이었던 학계에서 파격적인 조치였다.


강의를 하고 독일문학작품 번역을 하던 전혜린은 당시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개방적이었다. 남자들처럼 술과 담배를 즐겼던 호탕한 성격으로도 잘 알려진

▲ EBS 드라마 <명동백작>속의 전혜린. 탤런트 이재은이 전혜린 역을 맡았다.
전혜린은 당시 명동백작인 이봉구와 작가 박인환 등과도 친분을 쌓으며 지적토론을 즐기고는 했다. 그 때 전혜린과 주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던 명동의 ‘학림다방’과 대폿집 ‘은성’은 아직도 회자되며, 2004년 EBS 드라마 <명동백작>의 주요무대가 되기도 했다.

 


전혜린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갗에 대해 고민했다. 전혜린 평전 <전혜린>을 쓴 자유기고가 이덕희씨는 “전혜린이 지닌 내면적인 고립감, 세계와의 깊은 불화 의식, 본질적인 자신으로 있으려는 순수한 갈망을 그녀가 남긴 일기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서구의 문학론이나 철인들의 예로 가득 차 있어 얼핏 관념적으로 보이는 전혜린의 글들에서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저항과 비범성을 볼 수 있다.


관념적인 비범성뿐만이 아니라 검은 옷과 검은색 스카프를 즐겨하는 등 특별한 행동도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문학평론가 장석주씨는 “당시는 한국적인 것보다는 서구적인 것에 젊은이들이 들떠있었던 시대”라며 “그런 상황에 서구적 향수에 도취한 비범한 글을 쓴 전혜린은 젊은 세대의 우상과 화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수필집, 문학 번역서 몇 권 등 전혜린의 업적은 “1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천재”라는 평을 듣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더군다나 그녀의 수필집의 강렬한 인상이 현재까지도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은 최하나양(국문 03)은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전혜린은 머리로만 고민하는 인물로,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며 “그렇지만 60년대부터 아직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은 그녀의 삶에 대한 열정적인 태도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전혜린 생존 당시 친분을 쌓았던 이들은 그녀를 “정말 뜨겁게 살았던 불꽃같은 여자”라고 일컫는다. ‘천재’라는 평이 그녀가 쌓아왔던 업적이라기보다는 자기인식과 성찰로 향하는 에너지와 집중력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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