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김우형 강사

얼마 전 도서관 앞에서 문과대학 어느 학과의 노교수 선생님 한분과 마주쳤었는데, 그분과는 가끔 지나칠 때 인사만을 주고받는 사이라서 그냥 목례하고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이날은 왠지 그분이 나를 부르시더니 무엇을 공부했고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등등을 묻고는 몇 가지 말씀을 주고 가셨다. 그 요점은, 현재 우리나라 인문학은 위기상황이니 앞으로의 전망이 밝지 않으므로, 같은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공부하며 책도 쓰면서 꿋꿋하게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조언과 당부의 말씀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각오를 새롭게 하기도 하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 조금 우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었다.

최근에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인문학과 순수학문의 위기가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다. 이때 나는 학생들이 순수학문 특히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 그들은 직업적으로 인문학을 하는 나만큼이나 지금의 인문학이 처한 좁은 입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철학을 하는 내가 존경스럽다고까지 말했다. 인문학과 순수학문의 전망이 반드시 어두울 뿐일까? 나는 정말 학생들이 존경할 정도로 위험을 무릅쓴 간 큰(?) 선택을 한 것일까?

물론 학업을 계속 한다는 것이 돈벌이와 생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순수학문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이나 순수학문을 한다는 것이 빈한함과 곤궁을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조금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정규 학위과정을 마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부담은 선진 외국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먹고 살 방도는 있게 마련이다. 즉, 문제의 관건은 개인의 의지와 욕구의 조절에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현재의 상황을 달리 볼 수 있다. 사실 절욕(節慾)의 마음을 가지고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지 않는다면 학문하는 삶처럼 즐거운 것도 없다. 동창 중에서 누구는 언제 결혼해서 지금 어떤 차를 몰고 어디에 있는 몇 평짜리 집에 산다는 것을 비교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있고 성취한 것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마음은 충분히 즐거워 질 수 있다. 오늘날 학문하는 데 필요한 정신은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아니라 자기 분수에 만족하는 안분낙도(安分樂道)이다.

 

단지 막연한 두려움과 어둡게 보이는 전망 때문에 흥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나 순수학문 하는 것을 회피한다면 이것은 용기와 도전정신의 결여가 아닐까? 인문학과 순수학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순수학문을 비롯한 제반 과학은 지식을 창출해내고 그 가운데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그것을 해석하여 일상의 영역에 적용하는 임무를 담당한다고 할 때,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것이고 계속 요청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인문학의 경우는 범위를 너무 인문 영역에만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고 본다. 어쩌면 지금의 인문학이 겪고 있는 위기는 바로 이점에 기인할지도 모른다. 지나간 과거가 말해주듯 역사의 황금기는 항상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활발히 교섭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던 시대였다. 인문학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인문의 영역에 갇히지 말고 자연과학에 눈을 돌려야 한다. 물론 반대로 자연과학 또한 인문학을 배척하지 말고 흥미를 가지고 섭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문학과 순수학문의 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것에 도전해볼 때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위기는 늘 기회로 변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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