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꼬집기

9면에 이런 말이 있다. "1년 동안 춘추에 몸담은 나의 시각에서 볼 때 춘추 기자들의 사안을 보는 눈은 날카롭고 정확하다." 하지만 반 학기 정도 지켜본 나는 왜 그 날카롭고 정확한 시각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닐까?

1면을 보자. 톱기사는 대학원 총학생회가 대학원 만족도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서 발표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앞으로도(!) 1만 원우의 대표기구로서의 역활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원총회장의 말을 인용한다. 앞으로도? 설문조사 하는게 원총의 역활인가. 설문조사 결과가 이러하니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

4면의 신촌이모저모에는 이월적립금 이야기가 손바닥 반만하게 나온다. 반면 옆 5면은 영어로 수업하는 특이한 언더우드 학부생들과도 잘 자내자는 취지의 기획기사가 한 면을 다 채우고 있다. 바뀐 것 같지 않나? 휴학하고 등록금 버는 학생들도 있는 마당에 1천5백억이나 쌓아둔 돈은 어디에 쓰는지 알아보는 기획기사를 독자는 원한다.

11면 "그들의 진정한 '송환'을 위하여"는 그들의 진정한 송환을 전혀 위하고 있지 않다. 그저 비전향 장기수분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열거하고 시신 송환을 계기로 앞으로는 잘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그분들이 저주하는 국보법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그런 종류의 기사가 tv에 나오는 안타까운 사연을 보면서 동정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8면 "십계명"에서는 행복을 외부에서 찾지말고 지금에 만족하며 그 속에서 발견하라고 한다. 하지만 기자는 그래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불행을 고발하고 행복을 찾아내야 한다. 9면에 이런 말도 있다. "기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 취재하고 보도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백번 맞다. 나도 춘추가 딱 이 정도만 해줬으면 한다. 세상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조선일보의 특종기자 외에도 널리 알릴만한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고 언더우드 학부생과의 화합보다 중요한 다른 화합도 많다. 앞으로 춘추가 진짜 날카롭고 정확한 시각을 한껏 뽐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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