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의 실체 밝혀낸 조선일보 기자 이진동 동문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특종이 기자 개인에게 가지는 의미는 대단하다. 비단 ‘가문의 영광’일 뿐 아니라 소속 언론사의 명운을 좌우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런 특종을 많이 하는 기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여기 너무 행복해서 입이 귀밑에 걸릴 지경인 사람이 있다. 바로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이진동 동문(영문·85)이다. 이 동문은 ‘한국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지난 14년간 일하며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주도적으로 보도해 ‘특종제조기’라고 불린다. 특히 지난 7월 21일에는 ‘소문만 무성하던 X-파일이 사실 김영삼 정부때부터 이뤄진 안기부 불법도청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폭로해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동문의 X-파일 취재기는 왜 그의 별명이 ‘독사’인지 짐작케 한다. 이 동문은 먼저 X-파일 비디오테이프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고 ‘정 재계인사들의 사생활을 도청한 이런 테이프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안기부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후 그는 전직 안기부 요원들을 찾아다니며 취재를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공씨 성을 가진 사람을 찾으면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귀띔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공씨 성을 가진 전직 안기부 요원을 찾는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전직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씨라는 사실을 알고 집에 직접 찾아갔다. 바로 여기서 이 동문의 기지가 빛을 발했다. 공씨를 안기부내에서만 부르는 호칭인 ‘실장님’이란 표현으로 불러 기자란 신분을 감춘 것이다. 옛 부하인줄 알고 순간 안심해 그를 집으로 들였던 공씨는 이내 기자인 것을 알고 곧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이 동문이 어디까지 아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결국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게 됐다.
겉핥기 취재를 지양해 ‘저널리즘의 마지막 보루’라 불리우는 탐사보도는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계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이 동문 또한 지난 2003년부터 ‘조선일보’ 탐사보도팀에서 2년여간 몸담았지만 팀이 해체되면서 사회부로 자리를 옮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 동문은 우리나라에서 탐사보도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각 기관의 정보공개가 많이 이뤄져있지 않고 ▲국내 언론사들이 바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탐사보도에 고정인력을 배정할 만한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출입기자이지만 출입처에 국한받지 않고 전방위로 취재를 다니며 기사를 ‘물어오고 있는’ 이 동문은 “아무리 철저히 취재를 해도 오보의 가능성은 항상 남아있기 때문에 특종보도를 한 날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투철한 기자정신의 소유자인 이 동문은 정작 대학 졸업 때까지 기자라는 직업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도권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파헤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직업이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언론계에 투신,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직업수명이 유난히 짧다는 기자직이지만 이 동문은 “나이가 들어서도 전문기자 또는 대기자로 활동할 수 있지 않겠냐”며 직업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였다. “올바른 기사가 많아질수록 세상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이 그 나름의 기자예찬론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족,
친구, 건강 셋만 버리면 좋은 기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며 씁쓸하게 웃는 이 동문의 뒷모습이 왠지 측은하게 여겨진 것은 기자 혼자
뿐일까. 오늘도 사회의 음지를 파헤치기 위해 불철주야하는 이 동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