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막판에 뜬 사나이』

TV를 켠다. 어떤 내용이 나오는가. 밝고, 즐거운 사건, ‘우리의 삶은 살만하다’고 느끼게 해줄만한 이야기들인가. 혹은 우리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다룬 것인가. 답은 ‘그렇지 않다’일 것이다. 분명히 우리에게 전해지는 소식들은 이와 반대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TV 뿐만은 아니다. 신문, 잡지 그 어떤 것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더 크고 넓은 면을 차지하며 우리 또한 그런 것들을 주로 찾는다.

영국의 대표적인 연극 작가 앨런 에이크번의 작품 『막판에 뜬 사나이』. 연극은 1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의 삶이 서로 왜곡돼버린 두 사람을 보여준다. 빅 파커와 더글러스. 17년 전의 은행 강도 빅 파커는 넘치는 끼와 말솜씨로 자신이 보여준 악행을 숨기며 스타가 됐다. 한편 죽음을 무릅쓰고 몸을 던져 강도를 막은 더글러스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채 그저 착한 소시민으로 살아간다. 매스미디어는 ‘말빨 좋은’ 파커를 가짜 스타를 만들었고, 진짜 ‘영웅’ 더글러스를 묻어버렸다.

여기에 이런 왜곡된 운명을 폭로하며 스타가 되려하는 여성 앵커가 등장한다. 질 릴링턴. 그녀는 두 주인공의 재회를 기획하며 둘 사이의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준비한다. ‘세상은 어떻게 영웅을 잊히게 하고, 악당을 스타로 만들었는가?’

“행복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이야기꺼리가 될 수 없어요”.

 이는 착한 소시민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더글러스에게 내뱉는 릴링턴의 독설이다. 그녀가 얘기한대로 악당을 스타로 만든 건 세상만은 아니었다. 그건 미디어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스타 앵커를 꿈꾸는 그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만드는 둘의 재회장면은 보다 강렬함을 주기위한 ‘연출’로 이뤄진다.

그녀의 기획에 의해 지중해에 있는 멋진 빅 파커의 별장에서 저녁놀과 함께 17년 만에 만나는 인연 속의 두 사람. 그 자체부터가 설정이었다. 둘의 감정을 표현하는 인터뷰 역시 마찬가지. 질은 평범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더글러스를 ‘불행한’ 사람으로 묘사하기 위한 질문만을 던진다. 또한 ‘불행한 영웅’ 더글러스에게 아이들이 꽃다발을 전해주는 장면이, 사실은 TV를 위해 연출된 것이었음이 드러날 때, 그 가식에 곳곳에서 관중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프로그램의 내용을 위해 배경도 인터뷰도 사람까지도 조작되는 ‘거짓’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꽤 무거운 내용일 수 있지만 주인공들의 코믹함으로 연극은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빅 파커가 보여주는 ‘끼’, 더글라스가 보여주는 순진함을 넘어서는 고지식함과 릴링턴이 보여주는 방송인으로서의 가식은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가식과 속물성은 ‘매스미디어가 만드는 거짓’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무척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가는 연출력이 놀랍다.

마지막 장면에 빅 파커는 자신을 사랑한 하녀에 의해 지중해의 멋진 바다에 빠져 죽는다. 그리고 2시간 40분이라는 긴 시간의 연극은 이렇게 어이없는 결론으로 끝난다. 또한 릴링턴이 준비한 다큐멘터리는 ‘스타’인 빅 파커의 죽음이라는 특종을 낚으며 완성된다. 재밌는 점은 연극의 처음과 끝을 릴링턴의 방송으로 시작하고 끝낸다는 점이다. 작가는 우리가 미디어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이 연극 자체도 자극적인 내용이라는 역설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인가. 답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연극 『막판에 뜬 사나이』. 오는 16일까지.(문의:☎ 396-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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