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의 실체 밝혀낸 조선일보 기자 이진동 동문
X-파일을 얘기하면 흔히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 이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한 사람이 바로 이 기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자는 삼성과 정부의 유착관계 등을 담은 테이프의 내용에만 집중했을 뿐 그 출처에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에 반해 이 동문은 누가 어떻게 도청을 해서 테이프를 만들었는지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테이프의 배후 및 사실관계를 몰라 테이프를 입수하고도 내부적으로 보도불가방침을 정했던 문화방송은 지난 7월 21일 이 동문의 기사가 나간 후에야 비로소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는 등 공세적 입장으로 선회했다.
X-파일이라는 같은 내용을 취재, 보도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동문은 종종 이 기자와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이 동문은 “신문은 지면이라는 특성상 방송보다 훨씬 정확하고 치밀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이 다르다”면서 “이상호 기자와의 비교는 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공교롭게도 이 기자 또한 우리대학교 경영학과 87학번이며 이 동문과는 과거 같은 취재처를 출입하면서 안면을 튼 사이라고 한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져있었다’는 시인 바이런의 말처럼 이 동문 또한 이 특종 보도 하나로 일약 스타가 됐다. 좬주간조선』의 커버스토리에 소개되는가 하면 ‘조선일보’ 자체 방송인 ‘갈아만든 뉴스’에 출연해 ‘조선일보’의 ‘이진동 마케팅’이 아니냐는 질투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은 각종 협박이나 미행, 원망 등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종의 ‘덤’이다. 그는 “그런 것 무서워하면 기자 생활 못한다”면서도 그의 보도로 말미암아 자해까지 한 공씨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대신 표현했다. 이를 보면 ‘특종기자의 말로가 대개 좋지 않다’는 향간의 속설은 전혀 근거없는 소리만은 아닌 듯 하다. 특종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취재원들의 인심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 /사진 신나리 기자 journari@yonsei.ac.kr | ||
겉핥기 취재를 지양해 ‘저널리즘의 마지막 보루’라 불리우는 탐사보도는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계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이 동문 또한 지난 2003년부터 ‘조선일보’ 탐사보도팀에서 2년여간 몸담았지만 팀이 해체되면서 사회부로 자리를 옮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 동문은 우리나라에서 탐사보도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각 기관의 정보공개가 많이 이뤄져있지 않고 ▲국내 언론사들이 바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탐사보도에 고정인력을 배정할 만한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출입기자이지만 출입처에 국한받지 않고 전방위로 취재를 다니며 기사를 ‘물어오고 있는’ 이 동문은 “아무리 철저히 취재를 해도 오보의 가능성은 항상 남아있기 때문에 특종보도를 한 날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투철한 기자정신의 소유자인 이 동문은 정작 대학 졸업 때까지 기자라는 직업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도권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파헤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직업이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언론계에 투신,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직업수명이 유난히 짧다는 기자직이지만 이 동문은 “나이가 들어서도 전문기자 또는 대기자로 활동할 수 있지 않겠냐”며 직업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였다. “올바른 기사가 많아질수록 세상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이 그 나름의 기자예찬론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족, 친구, 건강
셋만 버리면 좋은 기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며 씁쓸하게 웃는 이 동문의 뒷모습이 왠지 측은하게 여겨진 것은 기자 혼자 뿐일까. 오늘도 사회의
음지를 파헤치기 위해 불철주야하는 이 동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