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의 실체 밝혀낸 조선일보 기자 이진동 동문

▲ /사진 신나리 기자 journari@yonsei.ac.kr ‘특종은 나의 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특종이 기자 개인에게 가지는 의미는 대단하다. 비단 ‘가문의 영광’일 뿐 아니라 소속 언론사의 명운을 좌우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런 특종을 많이 하는 기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여기 너무 행복해서 입이 귀밑에 걸릴 지경인 사람이 있다. 바로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이진동 동문(영문·85)이다. 이 동문은 ‘한국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지난 14년간 일하며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주도적으로 보도해 ‘특종제조기’라고 불린다. 특히 지난 7월 21일에는 ‘소문만 무성하던 X-파일이 사실 김영삼 정부때부터 이뤄진 안기부 불법도청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폭로해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동문의 X-파일 취재기는 왜 그의 별명이 ‘독사’인지 짐작케 한다. 이 동문은 먼저 X-파일 비디오테이프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고 ‘정 재계인사들의 사생활을 도청한 이런 테이프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안기부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후 그는 전직 안기부 요원들을 찾아다니며 취재를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공씨 성을 가진 사람을 찾으면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귀띔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공씨 성을 가진 전직 안기부 요원을 찾는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전직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씨라는 사실을 알고 집에 직접 찾아갔다. 바로 여기서 이 동문의 기지가 빛을 발했다. 공씨를 안기부내에서만 부르는 호칭인 ‘실장님’이란 표현으로 불러 기자란 신분을 감춘 것이다. 옛 부하인줄 알고 순간 안심해 그를 집으로 들였던 공씨는 이내 기자인 것을 알고 곧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이 동문이 어디까지 아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결국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게 됐다. ▲ /조선일보 아카이브 자료사진
이런 특종을 ‘낚아낸’ 이 동문의 평소 취재방식은 의외로 투박하다. 오로지 발품을 많이 팔아 사실을 확인, 또 확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이 동문은 “기자를 좋아하는 취재원은 거의 없다”며 “이때문에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 때는도청이 잘 안되는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는 녹음하거나 펜으로 받아적는 모습을 가급적 삼가해 취재원을 안심시킨다”며 자신만의 취재 노하우를 전수했다.

X-파일을 얘기하면 흔히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 이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한 사람이 바로 이 기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자는 삼성과 정부의 유착관계 등을 담은 테이프의 내용에만 집중했을 뿐 그 출처에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에 반해 이 동문은 누가 어떻게 도청을 해서 테이프를 만들었는지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테이프의 배후 및 사실관계를 몰라 테이프를 입수하고도 내부적으로 보도불가방침을 정했던 문화방송은 지난 7월 21일 이 동문의 기사가 나간 후에야 비로소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는 등 공세적 입장으로 선회했다.

X-파일이라는 같은 내용을 취재, 보도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동문은 종종 이 기자와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이 동문은 “신문은 지면이라는 특성상 방송보다 훨씬 정확하고 치밀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이 다르다”면서 “이상호 기자와의 비교는 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공교롭게도 이 기자 또한 우리대학교 경영학과 87학번이며 이 동문과는 과거 같은 취재처를 출입하면서 안면을 튼 사이라고 한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져있었다’는 시인 바이런의 말처럼 이 동문 또한 이 특종 보도 하나로 일약 스타가 됐다. 좬주간조선』의 커버스토리에 소개되는가 하면 ‘조선일보’ 자체 방송인 ‘갈아만든 뉴스’에 출연해 ‘조선일보’의 ‘이진동 마케팅’이 아니냐는 질투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은 각종 협박이나 미행, 원망 등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종의 ‘덤’이다. 그는 “그런 것 무서워하면 기자 생활 못한다”면서도 그의 보도로 말미암아 자해까지 한 공씨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대신 표현했다. 이를 보면 ‘특종기자의 말로가 대개 좋지 않다’는 향간의 속설은 전혀 근거없는 소리만은 아닌 듯 하다. 특종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취재원들의 인심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 /사진 신나리 기자 journari@yonsei.ac.kr
이 동문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비단 특종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탐사보도기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탐사보도란 하루 취재해서 그날그날 기사를 써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회문제에 대해 몇달, 또는 몇년간을 집중해 취재하는 방식이다. 이 동문은 “탐사보도란 사회적으로 은폐된 비리나 구조적 모순을 심층 취재,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며 “인터넷 뉴스가 기성언론에 도전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깊이 있는 탐사보도야말로 기자의 마지막 승부처”라고 말한다.
겉핥기 취재를 지양해 ‘저널리즘의 마지막 보루’라 불리우는 탐사보도는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계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이 동문 또한 지난 2003년부터 ‘조선일보’ 탐사보도팀에서 2년여간 몸담았지만 팀이 해체되면서 사회부로 자리를 옮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 동문은 우리나라에서 탐사보도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각 기관의 정보공개가 많이 이뤄져있지 않고 ▲국내 언론사들이 바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탐사보도에 고정인력을 배정할 만한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출입기자이지만 출입처에 국한받지 않고 전방위로 취재를 다니며 기사를 ‘물어오고 있는’ 이 동문은 “아무리 철저히 취재를 해도 오보의 가능성은 항상 남아있기 때문에 특종보도를 한 날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투철한 기자정신의 소유자인 이 동문은 정작 대학 졸업 때까지 기자라는 직업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도권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파헤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직업이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언론계에 투신,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직업수명이 유난히 짧다는 기자직이지만 이 동문은 “나이가 들어서도 전문기자 또는 대기자로 활동할 수 있지 않겠냐”며 직업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였다. “올바른 기사가 많아질수록 세상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이 그 나름의 기자예찬론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족, 친구, 건강 셋만 버리면 좋은 기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며 씁쓸하게 웃는 이 동문의 뒷모습이 왠지 측은하게 여겨진 것은 기자 혼자 뿐일까. 오늘도 사회의 음지를 파헤치기 위해 불철주야하는 이 동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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