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사회
그 많던 어르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 정진환 기자
  • 승인 2005.10.03 00:00
  • 호수 1526
  • 댓글 0
지난 9월 29일 찾아간 서대무구 연희3동 성원 아파트의 한 경로당. 고작 네댓명의 노인들만 모여 화투를 치고 있었다. 근처 성원샹떼빌 아파트에 있는 또 다른 경로당은 사정이 더욱 심각해 아예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유순준 할머니(77)는 “와봤자 사람도 별로 없어 심심하다”고 하소연했다. 옆에 있던 이아무개 할머니(79) 또한 “십년전만 하더라도 경로당은 또래 노인들로 북적북적하던 공간이었다”며 ‘잘나가던’ 시절을 새삼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경로당에 노인이 없다. 노령화사회 진입으로 노인숫자는 늘어나고 있는데 정작 경로당에는 노인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는 현실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이는 “화투치거나 장기두면서 소일하는게 전부”라는 유 할머니의 말처럼 경로당이 다양한 문화활동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목포대 사회복지학과 이수애 교수가 지난 2004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로당에서 노인들이 가장 즐기는 여가활동은 화투가 압도적으로 1위였다. 경로당 활성화 프로그램에 따라 일주일에 한번씩 사회복지사, 강사 등이 경로당을 직접 방문해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하나 일회성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소위 ‘있는’ 노인들은 경로당에 가기보다는 근처 노인종합복지관을 이용하거나 골프, 테니스 등의 고급취미활동을 즐기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또한 평균수명연장 등으로 인해 노인들의 노년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얼마전 열린 ‘2005 실버취업박람회’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더이상 뒷방에 나앉아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노년을 개척하겠다는 의지의 소산이다. 이밖에도 패스트푸드점에 중산층 노인들이 주요 고객으로 자리잡는 등 급격히 변화하는 노인문화를 아직도 화투판과 티비 시청으로 일관하는 경로당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로당의 실태가 열악한 것도 문제다. 운동기구나 마사지 기구는 언강생심 꿈도 못꾸며 티비같은 기본적 도구가 자주 고장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는 냉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기도 한다. 이는 빈약한 예산지원때문이다. 여유있는 시도의 경우 운영비로 매월 20만원 가량을 지원하고 있지만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일부 지자체는 고작 6만원에 그치고 있다. 유류비도 연간 60만원이 전부다. 대한노인회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정치권에서 노인표를 얻기 위해 지원을 많이 해줬지만 최근 선거법 규정이 강화되면서 그마저도 뜸해졌다”고 털어놓았다.
경로당이란 이름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지난 1981년이다. 그 이전의 이름은 사랑방 또는 노인정이었다. 과거 조선시대 동네 부잣집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방 하나를 제공하면 그곳에 농한기를 맞아 마을 사람이나 나그네들이 모인 것이 기원이었다. 이런 경로당은 오랜 세월동안 대표적 노인여가시설로 자리매김해왔으며 현재도 수치적으로는 타 노인관련시설과 비교, 압도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노인 여가복지시설 중 노인종합복지관은 1백52곳인 반면 경로당은 5만1천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지금까지 노인복지시설 중 유독 경로당이 많았던 이유는 정치적 측면에서 기인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03년 발표한 ‘지역별 노인복지 현황과 정책과제’ 연구보고서는 ‘건립 및 운영비용이 저렴한데다가 지자체장 선거에서 노인들에게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경로당 건립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1백가구 이상 주택단지는 6평 이상의 노인정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택 건설기준에 관한 관리규정’때문에 경로당 숫자가 그 수요와는 상관없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이다. 텅 비고 있는 경로당은 이러한 과다공급과 무관하지 않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경로당이지만 여전히 노인정책의 기초 단위이자 일반 노인들에게 있어 가장 가깝고 친근한 여가공간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노인복지 증진의 관건인 경로당의 활성화(아래 관련기사)가 필수적인 시점이다. 대한노인회의 또다른 관계자는 “경로당이 단순한 쉼터가 아닌 지역사회 소통의 거점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며 “경로당 노인복지센터 전환”이라는 참여정부의 공약 이행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경로당,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하고 떠나버린 ‘어르신’들을 되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정진환 기자  anelka@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진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