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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가봤더니...아스팔트 위에 떠있는 지식의 오아시스
  • 이민성 기자
  • 승인 2005.09.26 00:00
  • 호수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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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스로를 ‘고추장’이라고 부릅니다. 추장이 대표라는 명칭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고, 들으면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기 때문이죠.”
연구공간 ‘수유+너머’(아래 수유)의 ‘추장’ 고병권 연구원의 말은 이 곳의 탈권위적인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유는 개인적 연구공간으로 조직된 ‘수유연구실’과 지난 1999년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독립해 따로 만들어진 연구모임 ‘너머’가 2000년 봄 서로 결합한 ‘자발적, 능동적 지식생산’을 위한 연구공동체다. 수유는 개인이 자신의 기호와 관련된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으로 고전문학부터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10여개가 넘는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강좌 및 개인 연구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회원들은 각자의 관심분야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화요토론회도 열리고 있다.
총 3층으로 구성된 이 곳은 약 60명에 이르는 일반회원들이 원하는 경우 언제든지 상주를 하며 각자의 연구를 할 수 있게끔 구성돼 있다. 1층에 위치한 주방은 회원들끼리 돌아가면서 당번을 맡아 조리 및 관리를 하고, 2층에는 작은 까페, 갤러리, 세미나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3층에는 연구실과 집필실 등이 있으며, 무성한 나무로 뒤덮인 옥상에는 작은 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자율적이고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수유 사람들은 식사나 카페 운영도 당번을 정해서 하고, 건물 운영비는 각자 형편에 따라 ‘내고 싶은 만큼 내는’ 회비를 통해 충당된다. 직장에서 보너스를 탔으면 ‘특별회비’라는 목록으로 한번쯤 쏴도 좋다. 또한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옷은 그에 해당하는 적절한 가격을 붙여 판매하고 카페에서 자기가 쓴 그릇은 각자가 씻어서 놓는다. 밥도 1천8백원이면 누구나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수유에 대해 고 연구원은 “자유를 찾아서 온 사람들이 자기 기호와 취향에 따른 활동들을 하는 공동체”라며 “자율적 공동체생활을 통해 구성원들끼리 서로 이득을 얻으며 돈도 절약하게 되는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수유에서는 「이영섭의 조각과 만나는 세상」이라는 도자기 강의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에서는 각자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시상을 위해 수강생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상이라고 해서 순위를 매겨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이 많이 들어간 작품에게 주는 ‘셤셤옥슈상', 제목을 통해서는 작품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예측불허상' 등을 수여해 이 곳 특유의 분위기를 실감케 해줬다. 행사에 참여한 미술평론가이자 회원인 최형순씨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수동적이고 구속적인 일상과는 다른, 자율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이 곳에 이끌려 오게 됐다”며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배울 것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수유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연구를 했고 그 결실을 맺었다. 생활에 쫓겨 ‘자기 것’을 찾기 힘든 세상에서 수유의 존재는 개인의 자기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 그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수유는 한편으로는 상당히 배타적인 공간이다. 물론 수유는 관심과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일반회원이 되기 위해 설거지나 요리 등 일종의 견습과정을 거쳐야 하는 점과 강의와 세미나의 대부분이 고전연구같이 어려운 주제로 구성돼 있다는 점은 일반인들이 이 곳에 발을 내밀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담감을 준다. 수유가 수동적으로 뭔가 강요된 일상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지식의 쉼터’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해 본다.

이민성 기자  wait4yo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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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간의 유대성과 타인에게서 받는 배타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수유+너머' /사진 신나리 기자 journar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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