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대학가를 접수했다

조모임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바야흐로 조모임이 2005년 대학가를 ‘접수’했다. 조모임 없는 강의 찾기가 더 힘들다는 경영학과 전공수업은 물론이고 교양수업의 경우에도 두개 건너 하나 꼴로 조모임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모임을 통해 이뤄지는 보고서나 발표점수는 전체 성적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왜 지금 조모임일까, 도대체 왜?

조모임의 기원(?)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한 빔 프로젝터가 나온 90년대 중반부터’라는 소수설과 ‘경영학과 전공 수업에서 유래했다’는 다수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특히 경영학과는 ‘조모임이 하도 많아서 한학기만 지나면 모든 학생들이 서로의 얼굴을 대충 알 정도’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조모임의 메카로 불리운다. 장대련 교수(경영대·마케팅)는 “경영은 기업현실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팀워크를 쌓을 수 있는 조모임은 나중에 휼륭한 경영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이종대군(경영·04)도 “조모임을 많이 경험해본 경영학도들이 훗날 업계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속설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기업의 채용과정에서 집단토론, 합숙 등 다양한 형태를 띈 면접시험의 등장은 대학가 조모임의 활성화와 무관하지 않다.

교양수업의 경우는 경영학과와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대부분 대형강의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토론이나 커뮤니케이션이 힘들 수밖에 없다. 결국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는 강의자 중심의 일방적인 수업이 되기 쉽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서 탈피해 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토론식 열린 수업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교양수업에서 조모임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대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강의하고 있는 사학과 김소남 강사는 “답사, 비디오감상, 서평 등 다양한 활동을 조별로 하게 해 서로 경쟁과 토론을 시켜 발전을 유도한다”고 말한다.

“조모임에 유감있다!”


그러나 조모임에 대해 유감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연세대정보공유’와 같은 각종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조모임 없는 수업 추천해주세요’, ‘경영학과를 지원하려고 했는데 조모임이 많다는 말에 고민입니다’ 등의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학생들이 조모임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불만은 뭐니뭐니해도 얌체같은 ‘프리라이더’(freerider)다. 프리라이더는 조별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이들은 조모임에 늦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핸드폰을 꺼놓고 잠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프리라이더들 때문에 일부 교수들은 조별 보고서에 프리라이더의 이름과 학번을 따로 제출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심지어 경영학과 모교수의 경우 조원 중 3명 이상이 프리라이더로 지목한 학생에 대해서는 개별평가를 한다고. 그러나 “프리라이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다 팀워크이고 자기 능력이다”는 장 교수의 말도 일리가 있다.

또한 고등학교 시절 ‘나만 공부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에 골인한 학생들은 안면이 낯선 다른 조원들과의 만남과 협동에 거부감을 보인다. 따라서 일부 학생들은 친한 친구들과 같은 조를 하기 위해 일부러 교수에게 조편성의 자유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설령 같은 조가 되더라도 그 만남은 단지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한 피상적이고 가식적인 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같은 조였다가 그 수업이 종강한 후 헤어지면 대부분은 그걸로 끝이다. 가끔씩 백양로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뻘쭘하게 인사 한마디만 하고 총총히 사라지기 일쑤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이종대군은 “지금도 과거 조모임을 같이 했던 친구들과 가끔 연락을 하며 친분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친분이 간혹 가다 지나쳐서 핑크빛 로맨스로 발전하기도 한다. 엄아무개양(영문·04)은 조모임이 인연이 돼 현재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 경우. 같이 프로젝트 준비를 하면서 친해졌고, 조모임이 끝난 후 어느날 우연히 재회하면서 사랑이 싹텄다고.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조모임의 문제점은 열린 교육을 지향했던 본 취지와는 달리 단순한 조발표와 관람이라는 수동적 관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교수는 수업시간을 때우기 위한 목적으로 조모임, 발표 등을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이에 김 강사는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과 조원들의 참여도 여부 등을 수시로 체크해 조모임 활동을 역동적으로 유지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점 해결에는 “교수가 어떻게 유도하느냐에 따라 조모임의 성격도 달라지는 것 같다”는 이종대군의 말처럼 학생들의 노력뿐 아니라 교수의 영향 또한 중요하다.

한편 조모임에서 복학생으로 대표되는 고학번들의 강세는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조발표에 파워포인트 기기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복학생들은 군대에서 파워포인트 기기를 다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충재군(경영·99)은 “아무래도 ‘짬밥’이 있는만큼 조모임 경험도 많을 뿐더러 재수강의 여지가 적은 만큼 조모임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적극적인 참여가 지나쳐 아예 자기 혼자서 다 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일일이 역할분담을 하기가 귀찮은데다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해서다.

또한 대학생들의 관심사가 이데올로기에서 학점, 영어, 취업 등으로 변하면서 그동안 사라졌던 대학가의 토론문화의 부활도 새로운 모습이다. 비록 학점을 받기 위한 강제적인 토론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이러한 조모임때문에

최근 학내외 세미나실 등에서는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있는 대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김 강사는 “조모임이 소위 ‘빡센’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노력 없이 진정한 학업성취를 얻을 수는 없다”며 학생들의 조모임에 대한 능동적 참여를 촉구한다. 조모임, 분명 강의식 수업에만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압박이다. 하지만 이를 잘 활용만 한다면 얻는 것 또한 알차다. 물론 알차기 위해서는 강의자 측의 ‘알찬’ 강의준비나 진행도 필수적이겠지만 말이다. 조모임, 우리 이제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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