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이경옥 동문(간호·67)

   “호스피스의 역할은 환자들이 그림을 그릴 때 옆에서 물감을 풀어주고 떨리는 손을 잡아주는 거에요.”
우리 모두가 웰빙(Well Being)을 생각할 때, 연 2백여명의 말기암 환자를 웰다잉(Well Dying)으로 이끄는 사람들이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떠나는 길을 보살피고 사별가족의 정신적 회복을 돕는 호스피스들이 바로 그들이다. 세브란스 병원 호스피스 센터(아래 센터)에는 지난 9년 동안 환자와 그 가족들 곁을 묵묵히 지켜온 센터의 팀장 이경옥 동문이 있다.

호스피스를 선택하기까지

   지난 1967년 우리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한 이 동문은 졸업 후 먼저 간호사로서 환자들을 돌봤다. 그녀는 간호사 재직기간 동안 환자의 죽음을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이 동문의 배려심과 기독교인으로서 환자들에게 부드럽게 다가가는 모습을 눈여겨본 병원 측은 지난 1996년 그녀에게 호스피스로 일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동문은 “당시 생소하고 전혀 공부해 보지 못한 분야인 호스피스가 되는 것에 선뜻 나설 수 없었지만 간호사로서의 경험을 살려 시작해보자고 마음먹었다”며 호스피스로서의 첫 발걸음에 대해 설명했다.

   이 동문은 일을 맡았을 때,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부담감에 고충을 겪었다고 한다. 호스피스의 대상이 되는 말기암 환자들이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진들에게서 외면의 대상이 돼 왔고, 그들에게 필요한 통증조절과 인생상담 등 많은 도움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했던 현실에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이 동문은 “환자를 임종까지 편안히 안내하면서 얻는 보람과 나를 비롯한 가족의 건강, 화목에 대한 감사, 자아의 성숙을 느끼며 차차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임종을 지키는 그녀의 안타까움

   한편 이 동문은 환자에게 경제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환자를 도울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 자신의 역량부족과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그녀는 가장 안타까웠던 환자로 50대 초반의 한 자궁암 환자를 꼽았다. “자궁암은 병의 특성상 냄새가 많이 나거든요. 제가 그 분을 찾아갔을 땐 이미 냄새 때문에 누구와의 만남도 피할 정도로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고 주변의 가족들도 간호를 힘들어 하는 상황이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던 환자에게 마지막 가는 길에라도 고통을 덜어드리려고 통증완화치료와 냄새제거를 병행하자 일시적으로 상태가 호전됐어요. 그러나 이를 착각한 환자는 ‘나도 나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결국 호스피스 서비스가 오히려 죽음을 거부하게 만든 거죠”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엔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호스피스, 나의 이야기

   ‘웰빙은 웰다잉이다’를 강조하는 이 동문은 죽음에 대해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자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며,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내가 건강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만약 환자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과연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라며 죽음 앞에선 작아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있듯이 죽음은 누구도 쉽게 수용할 수 없는 거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끝내 죽음을 수용하지 못할 꺼에요”라며 그녀는 호스피스의 숭고한 사명감을 표현했다.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며 웃는 그녀. 오늘도 임종을 앞둔 여러 명의 환자들이 그녀의 손을 거쳐서 위안을 얻어가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제도화의 미비로 매우 열악한 호스피스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의 역사의 뒷페이지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이 동문과 호스피스 종사자들. 이들이야말로 이 세상의 진정한 ‘소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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