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스카이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SOUL과 펜택앤큐리텔의 단체전이 열렸던 코엑스 세중게임월드. 입 안 가득 공기를 담은 채 초조해하며 마지막 경기를 끝낸 펜택앤큐리텔 소속의 이윤열 선수는 경기에 패해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멈춰있었다. “손톱을 정리하면 경기에 지는 징크스가 있는데 오늘 무의식중에 손톱을 깎고 나와 진 것 같다”며 아쉬워하던 이 선수.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그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즐거운 게임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천재 테란’이 되기까지

이 선수가 게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시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접한 후 부터다. 천식으로 인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해왔던 정구를 그만두고 무미건조했던 그의 삶에 스타크래프트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학창시절, 그는 줄곧 학원보다는 PC방을 전전하며 게임 기술 연마에 치중했다. 기술을 쌓아 참가한 지역대회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그는 이후 대전, 부산 등의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중학교 3학년이 돼서는 프로게이머로서 서울의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처음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 선수는 “친구들은 호기심과 부러움에 지지를 보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반대는 꽤나 심해 많이 맞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전국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TV에 자주 얼굴을 비추다 보니 프로게이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이 선수의 부모님은 현재 그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됐다고 한다.


한편, 학생과 프로게이머라는 두 본분에 충실해야 하다보니 이 선수의 학창 시절은 일반적인 학생들과는 많이 달랐다. 중학교 시절에는 게임을 반대하는 선생님에게 반항해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고, 본격적인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게임을 위해 학교 수업을 거의 포기해야 했다. 이로 인해 담임선생님과 빚어지는 갈등은 연례행사였다고. 그는 “당시에는 프로게이머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 힘들었고, 나의 선택이 잠깐의 일탈이라고 우려하셨던 담임선생님의 반대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야간자율학습을 해야했던 적도 있다”며 안타까운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곧 “지난 2001년 ‘제2회 세계청소년 문화축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계속된 입상에 나의 가능성과 의지를 알게 된 선생님 역시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며 뿌듯함을 내비췄다.

원하는 일을 찾아 나가는 행운아

프로게이머들은 경기를 위해 합숙 생활을 하고 하루 평균 10시간이 넘도록 연습에 매진한다. 이렇게 즐겁지만은 않아 보이는 생활에 그는 “합숙을 함으로써 팀원들과 허물없는 사이가 돼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 같다”며 “1주일에 한두 번은 외출도 허용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할만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또래들과 다른 이러한 생활에 한번쯤 마음이 흔들렸을 법도 한데. 이 선수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지난 2004년 인하대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했지만 연습과 대회 일정으로 출석과 학점이 모두 저조해 현재 휴학 중인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았고, 이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힘든 때가 찾아와도 경기에 이겼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고 얘기했다.


프로게이머로서 활동한 약 5년동안의 경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그는 지난 2002년 ‘KPGA 투어 결승전’을 꼽았다. “결승전이 한국과 스페인의 월드컵 경기 당일에 열렸는데, 한국의 승리로 4강 진출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순간 약 1천여명의 관중 가운데 절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버렸다”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이 선수. 하지만 그는 “분위기는 비록 어수선했지만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던 날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이 선수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점이 많다”며 환상을 깨고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또한 게임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여 그는 “프로게이머로서 게임 연습만 열심히 하면 잘 될 것 같지만 대회의 뜨거운 조명으로 인한 체력 소모에 대비해야 하고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다”며 게임 이외의 부차적인 것들에도 신경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난 7월 갑작스런 부친상을 당하면서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던 이 선수는 지난 6일 ‘스카이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SK텔레콤 임요환·박태민 선수를 상대로한 단체전 경기 때 파트너 안기효 선수가 일찍 패한 1:2의 불리한 상황에서 승리해 ‘독무대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앞으로 세계적인 프로게이머가 돼 전 세계의 게임 매니아들이 나의 아이디 ‘[ReD]NaDa’를 알게 하고 싶다”는 그에게서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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