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부터 이틀 동안 백양로 한 켠에 죽 늘어선 하얀 천막들은 이 시대 대학과 대학생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열린 ‘제2회 연세 서울-원주 합동 취업박람회’가 바로 그것이다. 굳이 ‘적나라하다’는 말로 표현한 것은 해가 갈수록 심해져가는 취업난에 이제 대학도 발 벗고 나서고 있음을 북적이던 백양로 행렬 속에서 몸소 느꼈기 때문이리라.

▲오는 2006년 9월부터 기업 실무 경험이 있는 학생을 선발해 한국 기업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는 ‘한국형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한 서울대. 경영대학 학부와 일반대학원, 경영대학원이 모두 동시에 세계경영대학협회로부터 인증 받아 외국의 경영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박차를 가한 고려대. 나는 이와 같은 사례를 접하면서 학생들의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대학들의 노고를 감히 치하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씁쓸함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진리 탐구’라는 대학의 절대 본분을 망각한 채, 현실 사회의 잡다한 요구를 의도적으로 받아들여 적용시키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대학이 상아탑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보다 기능인 양성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동아리의 구호처럼 ‘세상을 향해 거칠게 질문하는’ 곳이어야 할 대학이,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며 공공적 의미를 함께 고민해야 할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하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연마케 하여 틀에 짜여진 기능인을 배출하는 데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학들의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물론, 멈춰서도 안 된다. 대학이 그 전통적 본분을 고수하던 시대, 대학이 학문연구의 전당으로서 배움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게 하던 시대는 오래 전의 일이며 이미 대학은 대중 교육기관으로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배출해야 하는 사명을 맡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 이러한 대학의 변화는 따져보면 우리네 20대가 용기내지 못하고 체제에 쉽게 순응한 책임도 없지 않다.

▲너무 많이 고민해 식상하기까지 한 대학의 역할에 관한 문제는 아카데미즘과 전문지식 및 기술 훈련 가운데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바탕으로, 무엇이 선행돼야 복합적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우리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인류를 훤히 밝혀줄 것이라는 메시아적 환상에 기대지 말고,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시선들이 닿는 곳에 무언가 작지만 치열한 고민부터 던져야 한다. 세상에 굴종하는 것보다 거스르는 것을 배우고, 보다 높은 노동력의 가치를 얻기 위해 떼쓰기 전에 치열하게 온몸을 던져 세상의 진리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지식인이라 이름 붙여진 우리가 전문지식과 기술 훈련을 조화하는 힘은 세상의 구체성과 나날의 치열함을 겪는 데에서부터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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