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9일,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했던 이른바 ‘국치일’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사전에 수록할 인물 1차분 3천90명을 발표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그 명단을 두고 사회 일각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해방 된지 60년이 된 지금까지 친일파 문제가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가 되는 것은 해방 직후 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우리 현대사의 특수한 구조 때문이다. 친일파 청산을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와해된 이후, 친일세력은 냉전 구조와 분단 체제 하에서 여전히 우리 사회의 지배층으로 군림하게 됐고, 따라서 친일파 청산이라는 과업은 새로운 차원의 역사인식이 수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됐다. 친일파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해진 것은 그만큼 우리의 역사적 능력이 성장했다는 증거다. 시간은 놓쳤지만, 이제라도 친일파 문제를 규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친일파가 남북 분단 구조 속에서 유지될 수 있었던 점에서 그 청산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분단의 멍에를 극복하는 과정이며 정치경제적으로 구축된 비민주적 억압구조를 깨고 인권과 평등을 이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 후 60년이 경과하면서 모든 사회적 사정이 해방 직후와는 다르다. 따라서 친일파 문제를 보는 자세도 해방 직후의 ‘열망’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당사자가 대부분 없는 지금, 친일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그간 60년간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진실 규명의 차원이고 역사적 문제다. 친일파와 그 후손을 우리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친일파 문제는 왜곡된 현대사를 바르게 정립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 자기희생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무조건적인 ‘자기 조상 변호’와 잘못 형성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대응은 그만 둬야 하고, 친일파를 고발하고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도 안된다. 최근 친일파의 후손(미국에서 대학을 다님)이 자신의 조상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발표한 것을 다시 한번 음미했으면 한다. 친일파 청산이 한국근대사의 과제인 민족, 민주의 근대국가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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