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로터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시간은 아침 8시 50분, 수업은 1교시 종합관 4층. 뛰어도 지각인 상황에서 연돌이가 내린 결정은 “에라 모르겠다, 독수리다방(아래 독다방)으로 가자!”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온 독다방에는 연돌이 말고도 수업을 포기한 몇몇 친구가 더 있다. 커피 한잔과 모닝빵 2개로 허기진 배를 채운 연돌이는 친구들과 함께 그날의 모든 수업을 뒤로하고 옆에 있는 독수리 당구장으로 향한다.
 위와 같은 상황은 7·80학번대 선배 동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법한 일이라고 한다. 변변한 놀이·휴식공간이 없었던 당시, 학생들에게 독다방은 휴게실과 같은 장소였다. 응원단장을 2번이나 지낸 오희재 동문(재료공학·78)은 “응원단 연습이 지칠 때 독다방을 찾곤 했다”며 “운동부 선수들도 독다방 단골손님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오동문은 독다방 단골손님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다양한 일화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DJ에게 1~2곡을 신청하고 이 신청곡을 듣기 위해 3~4시간씩 기다리는 일도 감수하곤 했다”며 “DJ의 입담이 재미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독다방은 남녀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주선하는 장이기도 했다. 오동문은 “1층에 있던 메모판에 있는 글들을 읽어보고 미팅과 관련된 내용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선점해 후배들에게 미팅을 주선해 주기도 했다”며 당시 즐거운 추억을 회상했다.
 오동문은 “대동제의 하이라이트였던 ‘쌍쌍파티’에 파트너가 없는 사람은 이성친구를 찾으러 독다방으로 향하기도 했다”며 “독다방에는 ‘쌍쌍파티’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다른 대학교 학생들도 있었다”고 말해 당시 독다방이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만이 아닌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풋풋한 추억을 만들어줄 기회를 제공했던 장소였음을 말해줬다.
 연세인 최고의 축제인 연고제 역시 독다방이 빠질리 만무했다. 연고제를 전후한 기간 동안에는 우리대학교의 응원곡들이 독다방에서 힘차게 울려 퍼졌다. “정기연고전 이틀 동안에는 모든 테이블을 뒤로 밀어놓고 학생들에게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독다방이 제공했다”는 오동문의 말에서 당시 놀이공간이 부족했던 연세인에게 독다방은 다방이상의 존재였음을 짐작케 했다.
 30여년을 넘게 많은 연세인에게 추억을 제공했던 독다방. 외국브랜드 커피숍이 난무하고 있는 지금, 이제는 그 모습을 감추고 연세인들에게 풋풋한 청춘 시절의 추억만을 남겨놓은 독다방이 더욱 그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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