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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학교 가는 길에 ‘그분’을 만났다.
  • 윤현주 기자
  • 승인 2005.09.12 00:00
  • 호수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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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대학 주변에는 예나 지금이나 ‘명물’이 존재한다. 우리대학교 앞 ‘회색할머니’, 이대 앞의 ‘베토벤 아저씨’와 같은 대학가 주변 사람들. 이들은 비단 우리 대학가 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대학가에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사회학과 박찬웅 교수(사회대·사회정책)는 “대학 주변 환경이 다른 사회 공간에 비해 그래도 비교적 개방적이고 관용적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어 박교수는 “대학생들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 비해 불평등 문제에 예민하고 적선, 구걸 같은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며 대학가 주변에 걸인들이 고정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분석했다. 어쨌든 그들은 이런 분석과는 상관없이 학생들의 추억속 한켠에 자리를 안겨준다. 개성있는 대학가의 사람들, 이들을 한 번 만나러 가볼까?

회색할머니,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모두가 분주한 월요일 아침, 정신없이 달려가던 학생들의 발걸음이 잠시 주춤한다. 바로 ‘굴다리밑’. 그 곳에서 항상 연세인들을 맞이하고 있는 ‘그 분’이 계신다. 늘 우중충한 회색빛 옷에 회색으로 머리가 세어버린, 바로 그 이름하여 ‘회색 할머니(아래 할머니).’ “너무 무서워요. 할머니한테 맞기 싫어서 일부러 건너편에서 와요”라고 말하는 윤지원양(인문계열·05)의 말처럼 할머니는 신입생들에게는 특히 더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다.
우리대학교 주변을 관할하는 신촌지구대에는 매학년 초가 되면 항상 할머니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에서도 이는 어쩔 수 없는 문제. 신촌지구대장 이상학씨는 “민원이 들어오면 그냥 학생들을 설득하는 편이다. 맞으면 운이 좋아진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법적으로 잡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누가 뭐라해도 연세인들이면 ‘다’ 알고 있는 ‘명사’가 돼버린 인물임은 분명한 사실! 그러나 누구도 이 ‘때리는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왜 우리가 맞아야 하는지 또는 할머니는 누구인지 쉽게 다가가 말을 걸 엄두는 내지 못한다 가을 햇볕이 찌는 듯했던 어느 오후, 큰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그을린 피부의 그녀는 “살을 허옇게 내놓는게 싫어서 여름에도 긴 옷을 입는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여느 할머니들과 비슷한 한 ‘노인’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할머니가 너무도 잘 웃으셨다’는 사실.
왜 그렇게 애들을 때리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아휴, 때리긴요. 예뻐서 쓰다듬는 거예요.” 하지만 예뻐서 쓰다듬는 것 치고는 할머니의 쓰다듬기는 너무 지나친 적이 많았다. 그래도 너무 아프다는 기자의 말에 “이제는 조심할게요 안아프게 할게요”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학생들을 아무나 때리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가 때리지 않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으니! 바로 ‘안경’을 낀 사람들이다. “아무나 못 건들여요~ 안경 부러질까봐 안경쓴 사람은 피하죠” 어쩌면 자신의 잘못을 미화시키려는 대답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제일 경멸했다”고 말하는 할머니. “살다보면 제일 싫어하는 일도 할 수가 있다”고 말하며 그늘이 진다. 분명 이 할머니에게도 남모르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리라. 할머니의 고향은 전라북도 군산. 시댁이 경기도 양주라서 경기도에서 밭일을 주로 했다는 할머니는 가족관계나 신상정보에 대한 물음에는 일절 답을 하지 않으셨다. 이름은 어렸을 때 ‘김개똥’이라는 이름이고 지금은 나이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우수에 찬 눈빛의
베토벤 아저씨!

우리대학교에 회색할머니가 있다면 이대에는 ‘베토벤 아저씨’가 있다. 베토벤 아저씨 역시 이대학생들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만한 베일에 싸인 인물!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의상과 헤어스타일, 분위기 때문에 그는 베토벤 아저씨가 되었다. 말쑥하게 곤색 자켓을 차려입고 얼굴에 화장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까지. 베토벤 아저씨가 이대 앞을 지킨지도 어인 10년을 넘겼다. 베토벤 아저씨는 회색할머니처럼 학생들을 때리거나 껌을 팔지 않는다. 항상 이대 앞을 꿋꿋하게 멍하니 누군가를 그리듯 우수에 찬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듯이 그냥 가만히 서있을 뿐이다.
“안 보이면 보고싶다. 그냥 학교의 한 풍경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하는 이화여대 김강지숙양(국문·03)의 말처럼 베토벤 아저씨는 이제 이대의 한 구성원이 되버린듯. 베토벤 아저씨는 서울대 중도, 식당에도 자주 나타난다고 하는데… 요즘은 개강을 하고 어쩐일이신지 그의 모습이 잘 눈에 뜨이질 않는다. “다른 학교 가셨을까봐 약간 섭섭하다”고 말하는 김강양.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백원만 주세요~”

어느 저녁, 고려대학교 정문 앞 지하도. 붉은 조명 빛에서 하루 종일 지하도를 서성이는 한 걸인이 있다. “백원만 줘”를 외치는 그는 초췌한 인상과 치료가 필요한 다리, 어눌한 말투의 ‘원만이 아저씨’다.
이 원만이 아저씨는 장작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하도에 있었다. 비록 학교 앞을 서성대는 홈리스에 불과하지만, 그 시간만큼 학생들의 정이 깊어진 것일까. 지난 2003년에는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원만이 아저씨 돕기 사랑의 캠페인’이 열려 모금 운동과 일일 호프로 성금을 모아 그의 다리 치료를 도우려 했다. 이 캠페인은 이에 부담을 느낀 ‘원만이 아저씨’가 잠시 고려대를 떠남으로써 중단됐지만, 고려대 최태호군(한문·03)은 “그만큼 학생들의 유대감과 의리가 학교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밖 사회에서도 뻗쳐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갚라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지금도 학교 앞 지하도에서는 ‘원만이 아저씨’가 여전히 “백원만”을 외치고 있다. 최군은 “아저씨는 새벽 2~3시 까지 학교에 남아서 밤늦게 공부하고 돌아가는 학생들이 아저씨의 저녁 간식을 챙겨주는 모습은 명물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정깊은 풍경”이라 한다.
이외에 다른 대학에도 명물은 어디서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서울대 ‘개 아줌마’ 성대 앞. ‘껌팔이 아줌마’ 등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이들. 어디서 나타나서 왜 여기에 있는지 베일에 싸여진 이들이지만 대학가의 풍경 속에 대학 생활의 추억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글 윤현주, 김현수 기자 cockeyesong@yonsei.ac.kr

윤현주 기자  gksmf07@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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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역에서는 지나가는 삼척동자도 '이분'을 안다.
(위정호 기자 maksann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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