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시

도시 내의 ‘소도’, ‘성역’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대학들은 그야말로 도시 내에 있는 ‘대학생의, 대학생에 의한, 대학생을 위한’ 공간이다. 그러나 일정 부지에 숨 막힐 듯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대학 건물들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지역사회와 단절돼 있다. 몇 개의 입구를 통해 거의 대학생들만 바쁘게 출입하는 캠퍼스. 주변 지역은 소비문화의 발달 외엔 대학가로서 어떠한 특징도 없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이 단절된 이러한 한국대학의 폐쇄적인 모습과는 달리 영국의 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는 도시와 함께 호흡하고 있어 도시 전체가 ‘대학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국의 전형적인 대학도시인 옥스퍼드시는 옥스퍼드대의 39개 각각의 단과대를 중심으로 모든 상권과 주거권이 형성돼 있다. 옷가게나 카페, DVD대여점 등 옥스퍼드시 대부분의 상점에서는 학생할인을 상설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목요일 밤은 ‘학생들의 밤’으로써 모든 주점이 학생증을 제시하는 학생들에게 메뉴를 평소의 1/3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옥스퍼드대는 지역 주민들의 협조를 통해 대학 건물과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시내 주택의 대부분을 단과대 기숙사로 사용한다. 지역 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시 외곽에서는 기숙사에 입사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홈스테이가 널리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배려에 학교 측은 각 단과대 내의 성당과 공원을 개방해 지역 주민들에게 쉴 공간을 마련해 주고, 학생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성가대 공연을 준비해 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옥스퍼드대의 수업은 주로 일대일 방식인데, 일대일 수업이 진행되는 장소는 카페나 공원벤치, 주점에 이를 정도로 제약이 없다.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SAP(Study Abroad Program)를 통해 옥스퍼드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이예나양(디자인/경영·02)은 “옥스포드대의 학생들은 옥스퍼드 시내 전체를 학교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라며 “실제로 옥스퍼드시에 온 한국 관광객들이 옥스퍼드대의 위치를 물어볼 때마다 ‘이 도시 전체가 대학’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케임브리지시는 웅장한 대학건물을 제외하면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할 정도로 도시 내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케임브리지대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킹스컬리지(King's college)’, ‘퀸스컬리지(Queen's college)’, ‘트리니티컬리지(Trinity college)’. 이들은 푸른 잔디와 나무로 우거진 안뜰과 정원이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형성하며 캠강을 따라 늘어서 있다. 학교 측은 매일 낮 시간 동안 지역 주민들이 대학 내의 안뜰과 교회, 식당 등을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자연스럽게 서로간의 교류를 증진시키고 있다. 더불어 지역 주민들은 대학 내에서 열리는 공연과 축제에 제약 없이 함께 참여할 수 있어 대학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다.

한편, 대학 주변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서점인 워터스톤스(Waterstone's)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서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지난 2003년 SAP를 통해 케임브리지대에 파견됐던 박넝쿨양(신방·00)은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지역이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박양은 “대학이 담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우리나라의 대학들과 달리, 케임브리지대는 지역과의 꾸준한 교류를 통해 지역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며 “케임브리지대에는 대학과 지역사이에 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기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는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다. 도시가 형성되고 난 후 담을 쌓아 만들어진 공간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대학들과는 달리, 위 대학들은 1200년대 최초의 단과대가 설립된 후 약 6백여년 동안 단과대가 하나 둘 모여 종합대학을 형성했다. 한국 대학들과 설립과정은 다르지만, 대학과 지역이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 나가려는 상호간의 노력은 진정한 대학도시로서 거듭나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는데 기본이 됐다.

 /김영래 기자 , 박수현 기자 dongl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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