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같은 프로 선수라고 해도 여성과 남성은 다르다. 남자선수들은
"ㅇㅇㅇ선수, 결혼 후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네요."
"역시 안정감을 찾아서 그런 거겠죠."
와 같은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나아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선수들에 대해서
"얼른 결혼을 해야 안정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을 텐데요."
라며 결혼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자꾸 압박을 넣는다(캐스터/해설위원들 매일 삼성 야구선수 양준혁만 나오면 이 얘기 꼭 한다. 그렇게 야구선수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지, 원).

하지만 '결혼하면 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플레이할 수 있으므로 좋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남자선수들에게만 해당된다. 여자선수들은 아직까지도 '결혼=은퇴'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후에 열심히 플레이를 할 경우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부투혼' 같은 명성(!)을 얻게 된다. 여성은 결혼을 함으로써 '안정감'과 '평안함'을 얻어서 운동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육아, 가사노동, 감정노동'등과 함께 운동을 '병행'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혹은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혼'이라고 이름붙이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이런 담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결혼과 함께 은퇴를 감행하며, 일단 은퇴를 했다가 몇 년 후 재기하기도 하고 결혼하면서 은퇴하지 않았더라도 훨씬 힘들게 된 상황에 못 버티는 경우가 많다. 결혼이 남자선수에게는 권고사항(필수사항인 것 같기도)인 것에 비해 여자선수에게는 '계속 프로선수로 뛰고 싶다면 추천할 만 하지 않은 것'이라는 건 결혼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위치/관계를 확연히 보여준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바로 맞벌이인데. 야구선수 김민범이 맞벌이이기 때문에 아이돌보기에 열심이라는 기사에 대해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지껄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이제는 안 보는 프로야구 문자중계에서). 사람들은 '육아는 결혼한 여성이 당연히 도맡아서 하는 것 아니냐' '게다가 프로 선수의 부인이라면 선수가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많이 순화시킴).
신기한 점은 여성이 프로선수일 경우에 그 부부가 '맞벌이'임을 누가 의심할까, 하는 것이었다. 부인이 프로선수여도 남편은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래야하는 것이다. 역시 모든 가사노동/육아/감정노동은 '그 여성이 플레이에 집중해야 하는 프로선수이든 말든' 상관없이 여성에게 주어지고 있고.

'프로선수는 결혼을 해야 안정적이다' '프로선수의 배우자는 선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거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이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마치 일관성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웃기다. '당위적인'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 결혼도, 경제생활도, 다 선택의 문제다. 다만 왜 선택의 폭이 이렇게 한정적인 지를 생각해야 하고 다른 선택지를 존중해야 하며 선택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덧1. 이런 생각은 요즘 한창 진행되고 있는 여자 프로농구를 보다가 들었다. 여자 프로농구 출범 당시(97-98 시범경기부터)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에서는 관중 유치를 위한 방안으로 선수들의 유니폼을 몸에 딱 붙는 밀착형 유니폼으로 바꿨다. 한 마디로 관중들이 여자 농구를 보러가 아니라 여자 선수들의 몸을 보러 농구장에 오게 하자는 발상이었다. 꾸준한 문제제기로 2000년에 바뀌긴 했지만 스포츠에 있어서조차 여성들은 대상화되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어쨌든 프로 여자선수들 화이팅.

덧2.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서는 여자선수가 없기 때문에 남자선수와 여자선수를 비교하기에 스포츠의 분야가 다른 것이 약간 걸리기도 했으나, 크게 봤을 때 전혀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17대 총여학생회 '움.펼.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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