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1975년이다. 2학년 봄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영 만사가 시답잖다. 나른한 오후, 학생회관 앞 잔디밭에 책가방을 베고 누웠지만 눈만 감았지 머릿속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복잡하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  송창식, 최인호, 박정희, 마르쿠제가 뒤범벅 되어 뇌 속 어디에선가 흐른 다. 이념 써클? 봉사 활동? 공부나 해? 고시? 근데 그 여자애는?

“야 임마 , 뭘하고 자빠졌냐?”


「연세춘추」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나가던 한 녀석이 발길로 나를 툭툭 건드려 깨운 것에 못내 언짢았던 나는, 그 ‘짜아식’과 마주 앉아 한 10분 남짓 이야기하다 곧바로 윤동주 시비를 지나 핀슨홀로 올라가 춘추사 입사 원서를 냈다. 그날이 원서 마감날이었고, 친구 녀석은 지나가는 말로 "너 정 그러면 춘추사 기자나 해보지 그러냐"고 했던 것이다.

첫 인상은 가관이었다. 필기 시험을 치고, 1차 합격자 발표에 면접 시험이라는 걸 보는데 기자들의 질문이 처음부터 반말이었다. 

“너, 지금부터 네가 총학생회장이라 치고 엊그제 학원 사태에 대한 성명서를 써 봐. 거어기 칠판에 분필로. 당장!!”

왜 그런 면접을 봐야 했는지, 왜들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기를 질러댔는지는 춘추사 입사 후에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운동? 운동 하려면 나가서 해”

여기는 신문 만드는 곳이지 운동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있었다.

휴교로 텅빈 교정에서,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시위 현장에서, 교수님과 마주 앉은 연구실에서, 학장실 총장실에서, 밤 늦게까지, 주말까지 나는 푹 빠졌고, 그 여자애는 점차 멀어져갔다.


“김수길씨는 너무 기자 같아”


가을.

수많은 가을들.

“기자로서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분석력, 종합력, 표현력 세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977년 가을엔 평생 두번째 입사 면접을 보고 다시 기자가 됐다.

그리고 수많은 가을들.

군사정권이 바뀌고 민주화가 이뤄지고 외환위기를 겪고 남북정상이 만나고 ‘노사모’가 등장하고 6자회담이 다시 열린 것이 한 축이었고, IT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또 한 축이었다. 「굿바이 구텐베르그」.  친구의 저서 제목이다.

춘추 70년을 맞아 지난 30년의 봄 가을을 휙 돌아보았는데, 요즘 가끔 강의를 나가면 단골로 하는 말로 글을 맺자.


“보도와 논평을 구분 못하는 언론이 대부분이다. 운동을 하려면 나가서 해야한다”

“종이신문뿐 아니라 모든 미디어가 위기다. 방송도 인터넷도.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뭘로 바뀌던 안바뀌는 것은 컨텐츠 생산이다. 미디어 포트폴리오 구성이 중요하며 그 기본은 컨텐츠다”



/김수길 동인(연세춘추 33기 동인. 현 중앙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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