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사회
아담, 이젠 이브에게 갈빗대를 내줄 차례남성페미니스트. 경계에서 말한다.
  • 정진환 기자
  • 승인 2005.09.01 00:00
  • 호수 1522
  • 댓글 0

▲ /일러스트 조영현
"어떤 여자화장실에는 물내리는 소리나는 벨 있는거 혹시 알아요? 어떤 지하철역에는 아기젖먹이는 수유실 있다는 건요?”

▲ 변상욱씨는 부인의 직장때문에 지난 20여년동안 주말부부로 지내오고 있다.
CBS 변상욱 기자는 여자보다도 오히려 여자를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남자로 통한다. 변기자가 여성주의의 길로 입문하게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하다. 1980년대 중반 한 교회 예배설교에서 들은 ‘세상을 만드신 이후 남성과 여성을 한번도 구분해보지 않으셨던 하느님’이라는 말 한마디에 받은 감동이 변씨의 눈에서 눈물을 주르르 흐르게 한 것이다. 그후 변기자는 여성민우회, 여성의 전화 등 여성단체들을 전담취재하며 페미니스트들과 교분을 쌓았고 급기야 페미니즘 저널 ‘이프’의 유일한 남성편집위원으로 위촉되기에이르렀다. 현재 변기자는 ‘이프’에 여성주의 등과 관련한 다수의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너도 어차피 남자잖아!"

한국에도 남성페미니스트가 있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어온 고참부터 시작해서 아직 멋도 모르는 초짜들까지. 그러나 이들 모두는 분명 페미니스트다. 그것도 남성 페미니스트! 남성페미니스트는 소수중의 소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여성페미니스트도 많지 않은데 하물며 남성페미니스트라니.
그렇기에 남성페미니스트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성균관대 총여학생회(아래 총여) 비상대책위원장 권송은숙양(정외·01)은 “여성주의 단체에서 일하는 남성들 자신조차도 자기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여부를 두고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고 말한다. 남성과 여성, 두 진영의 경계선에 서있는 소위 ‘박쥐’같은 느낌을 받아 외롭고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권송양은 또한 “쿨하고 진보적으로 보이기 위해, 또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여성주의에 입문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남성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여성주의 진영에서는 곧잘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여자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팔불출’이라는 같은 남성들의 냉소적 반응은 덤이다.

라디오 방송구성작가장 차우진씨는 남성페미니스트의 길을 걸은 이래 이러한 시련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겪어본 사람이다. 군제대후 총여 활동을 한 이래 수년동안 “어쩌다 여성주의자가 됐냐”는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고 정작 여성주의 운동을 하면서는 ‘나도 결국은 남자구나’하는 뿌리깊은 소외감에 시달렸다. 괴로워하던 어느날 차씨는 자신의 이러한 심경을 담은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그 글에 여러개의 댓글에 달렸는데 놀랍게도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남자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들과 연락을 하며 친해졌고 그렇게 해서 결성된 단체가 바로 남성페미니스트 단체 'MenIF‘다. ‘MenIF’는 그동안 ‘성폭력근절을 위한 남성서포터즈모임’을 결성해 성폭력관련 책자 발간과 사이버캠페인 등을 벌여왔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여성주의와 관련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우리 시작은 미약하지만 우리 나중은 창대하리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했던가. 남성페미니스트, 또는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남성들의 움직임이 무섭다. ‘딸사랑아버지모임’은 지난 2001년 6월 김병후, 정채기 등의 사회명사들이 딸들이 차별받는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발촉한 단체다. ‘딸사랑아버지모임’은 호주제 폐지 등 성차별문제에 대한 대응 강화, 정기모임 등을 통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을 남성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는 힘들겠지만 그동안 여성주의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중년남성들이 여성인권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이다.

▲ 서동진씨는 여성주의를 지지하지만 남성페미니스트가 되기는 거부하는 남성이다.
또한 부모의 양성을 함께 쓰는 남성들의 출현도 주목할 만하다. 가부장제의 수혜자인 남성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부터 부모의 양성을 함께 써왔다는 좬한겨레21좭 신윤동욱 기자는 “부모양성쓰기는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벌이는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화평론가 서동진 동문(사회·85)은 “친족관계가 막대한 비중을 차지했던 과거 사회에서는 부모양성쓰기 운동이 의미가 있었을지 모르나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운동은 일종의 ‘쇼’에 불과하다”며 부모양성쓰기 운동을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물과 기름의 관계였던 남성과 여성주의가 이제 많이 가까워졌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아직 많은 남성들이 여성주의의 당위성을 진정하면서도 여성주의 운동에 대한 반감과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예로 최근 여성주의 저널 ‘일다’는 한 보험회사 광고의 남성중심적 시각을 비판했다가 ‘오버한다’는 이유로 성난 남성네티즌들의 성토세례를 받기도 했다. 대학내 총여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지난 2004년 성균관대 총여회장을 역임했던 권송양은 “당시 남학생들 사이에서 ‘총여사람들은 다 싸가지가 없다’는 식의 근거없는 소문이 나돌아 기분이 나빴다”고 회상했다.

남성은 아예 여성주의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극단적 시각마저 존재하는 실정에서 남성페미니스트를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여성들에게만 그 부담이 지워졌던 여성주의 운동의 몫 절반이 남성들에게도 지워질 때 여성주의 운동은 보다 큰 진보를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점에서 소수이지만 누구보다 큰 열정을 갖고 사회전반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남성페미니스트들의 존재는 분명 희망적이다.

정진환 기자  anelka@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진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차우진씨는 "'어쩌다 페미니스트가 됐냐'고 질문세례를 당하는 것이 지겹다"고 말한다.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