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실이야, 허구야?

소설계에서 ‘팩션(Faction= Fact + Fiction)’ 열풍이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 해 출간된 『다빈치코드』가 100만부를 가볍게 뛰어넘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도 끊임없이 팩션 류의 소설이 등장하는 추세다.

▲ 허구이지만 진실을 말하는 소설. 사실과 허구의 조합으로 이뤄진 팩션에서의 진실은 독자에게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조진옥 기자 gyojuionx@


서점가를 점령한 팩션

지난 8월말, 서점가 화제의 신간과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어김없이 팩션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었다. 교보문고의 한 판매관계자는 “지난 해부터 꾸준히 사랑받은 팩션은 최근 『히스토리언』이나 『이중설계』로 그 관심을 이어나가고 있다”며 “팩션의 경우 대대적인 홍보 전략과 독자들의 관심이 잘 맞물려 성공을 보인 케이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대학교 중앙도서관의 지난 학기 대출순위만 보더라도 팩션이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어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팩션이 인기있음을 알 수 있다.

팩션이란 사실(Fact)을 바탕으로 저자의 허구적 상상력(Fiction)을 보탠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이 용어가 대중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실은  196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서울대 영문과 김성곤 교수는 팩션을 “1960년대 당시 미국의 급변하는 정치와 마약과 같은 불안정한 사회 정세는 기존의 소설 작가들을 당황케 만들었고, 저널리스트들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개발한 기사 작성법을 작가들이 빌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 팩션이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현재 사회가 1960년대처럼 불안한 이유도 있겠지만, 절대적 진리에 대한 확신을 버리고 사물의 고정된 경계를 해체한다는 포스트모던 인식의 확산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의 확장 또한 팩션 코드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키워드만 입력하면 무한한 지식이 쏟아져 나오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을 선호하게 됐다. 따라서 사실적인 믿음을 주면서도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만끽할 수 있는 팩션이 대중적 코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작가들이 제시하는 참고문헌이나 자세한 역사적 사실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지식을 얻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팩션' 개념의 대중적 인식

사실 팩션은 『다빈치코드』 이전부터 잔잔하게 계속돼 왔다. ‘팩션’이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인식되기 전부터 우리에게는 ‘역사소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꾸준히 인기를 얻은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조정래의 『태백산맥』 역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작가들이 상상력을 펼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팩션'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제까지 존재해 왔던 것을 새삼스레 이야기 하냐는 질책과 ‘지식소설’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말한다. 그러나 용어 사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팩션이라는 용어가 하나의 퓨전장르로 자리잡은 것은 확실하다.

요즘 서점의 인기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히스토리언』, 『최후의 만찬』, 『이중설계』, 『살수』 와 같은 팩션의 특징은 하나의 사건을 실마리로 해서 이야기를 시작해, 그 사건의 증거들로 소설을 이끌고 나간다. 그 단서를 통해 독자는 마음껏 상상을 펼치며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 사실과 허구사이의 모든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한소장은 “팩션이 경계를 해체하는 상상력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을 확인하는 것처럼 팩션의 존재 또한 그러하다”며 팩션 열풍을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팩션 또한 이미 존재했던 것이지만 우리가 그 존재를 모르다가 그것이 수면으로 떠올라 우리를 압도하면서 그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다.

▲ /조진옥 기자 gyojuinox@


'역사 혹은 진실'이라는 가면

하지만 팩션이 아무리 진실로 무장한 허구라 해도 함정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다빈치코드』의 전 세계적인 성공 이후, 소설에 등장하는 역사적 문헌에 대해 오류를 지적하는 책들이 뒤이어 나왔다. 원작소설과 그에 반하는 자료들을 동시에 접한 독자라면 모를까, 『다빈치코드』만 접하고 매혹당한 독자들은 그 내용을 사실처럼 믿어버리기가 십상이다. 소설 밑에 달린 주석들과 구체적인 문헌 제시는 가시적인 믿음을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팩션을 읽고 나서 엄청난 지식을 가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독자들의 착각은 출판사의 엄청난 홍보마케팅과 작가들의 “이 묘사는 정확한 것이다”라는 단언에서 비롯된 것이다.

팩션이 가지고 있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이라는 말에 걸맞는 작가들의 정확한 고증도 필요하지만, 독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팩션이 취하고 있는 사실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비평과 평론이 대중적으로도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이고 끊임없는 점검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한 쪽, 한 쪽 읽을 때마다 ‘이것은 사실일까 아닐까’라고 머리 아프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구절마다 일일이 집착하기보다는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진실을 이야기해보고자 하는 팩션의 주제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다면 ‘사물의 이면에 숨어있는 본질’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팩션들이 단순히 외국 인기작품의 번역인지, 아니면 한국에서도 확고한 출판 코드로 자리잡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팩션 열풍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부분의 팩션이 추리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팩션 장르가 등장할 것이다. 팩션이 진실의 탈을 쓴 허구가 아닌, 진실과 상상력의 경계를 허무는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팩션 작품으로 소통하는 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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