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젊은 청춘 지금 당신의 곁에 살아있는가"

▲ 김유나 부국장 cozooo1@
▲한여름의 태양은,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그놈의 엉덩이를 때리며 혼쭐을 내주고 싶을 만큼 얄밉다. 게다가 이따금 귀청이 찢어지도록 울어대는 매미소리라도 들리노라면 얼굴이 후끈하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봄이 경고했듯이 나 역시 ‘백년만의 무더위’를 예상하긴 했으나, 참지 못하는 살인더위의 불쾌지수로 인해 짜증과 게으름만 늘어가고 있는 여름방학이다.

▲그 여름방학이 벌써 한달이나 지났다. ‘벌써?’라는 놀라움 뒤에 따라붙는 ‘나는 과연 무엇을 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진드기 같은 물음에 또다시 한숨이 나온다. 이 물음은 물론 그 어느 때가 아니겠냐만은 특히나 방학 기간 동안에는 더욱더 부끄럽기에 고개를 들 수 없게 한다.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 이번 방학만큼은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다짐 아래 토익공부와 재즈댄스, 봉사활동까지 다 계획했지만 또다시 반복되는 게으름의 미학 덕택에 나는 지나가버린 시간의 ‘빠름’만을 탓하는 참으로 가여운 청춘이 돼버렸다.

▲그래, 다시 한번 물어보자.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고 힘찬 청춘이 과연 나의 곁에 살아 있는가? 학점의 노예였던 ‘죽은’ 삶에서부터 잠시 벗어난 나는 대학생다운 패기와 젊음을 지금의 무더위와 청춘 속에 멋지게 장식하고 있는가? 유치하긴 하지만 한때는 유행어로 번졌던 ‘방콕’ 생활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조차 할 수 없다. 스무살 나이에도 사람은 늙고, 여든 살이 되더라도 청춘으로 지낼 수 있다던 사무엘 올만의 말은 그것이 단지 꾸며낸 시가 아니라 진실일 수 있음에 청춘은 두렵기까지 하다.

▲작열하는 태양은, 때로는 아플만큼이나 눈이 부셔 볼 수는 없지만 그만의 열기가 얼마나 뜨겁고 강한 것인지는 느낄 수 있다. 도심 위 아스팔트가 태양에 녹아버리고 우리들의 숨이 꽉 막히도록 이 여름날 태양의 괴성은 뜨겁고도 힘차게 포효한다. 무기력한 청춘 소모, 새 학기가 시작되고 또 다시 지나가버린 청춘을 후회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 청춘의 기쁨을 만끽하자.

▲다시 한번 그의 말을 언급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머리를 높이 쳐들고 희망의 물결 위에 올라 있는 한 여든 살이 되더라도 사람은 청춘으로 지낼 수 있다’는 사무엘 올만의 말에 우리는 더욱 분노해야 하리라. 우리는 여든 살의 꼬부랑 할아버지보다 청춘 앞에 씩씩할 수 있는 나이임에 충분하니까. 청춘의 빛깔이 퇴색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끈적끈적한 무더위조차도 아무것도 아니고 젊음 앞에 방해물 또한 치사한 핑계일 뿐이다. 

▲두 손을 가슴에 대고 심장의 고동을 느껴보자. 느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늙어버린, 가여운 청춘이다. 지금, 당신의 심장 속에서 청춘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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