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예뻐진다? 사랑하면 가만히 있어도 배가 부르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것도 부러운데 예뻐지고 배가 저절로 부르기까지 하다니 정말 배아플 노릇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만 보이고 생각만 해도 날아갈 듯한 마음, 무엇을 해도 예뻐 보이는 연인, 끊임없이 두근거리는 심장…. ‘사랑’이라는 감정이 변화시키는 몸과 행동에 대한 과학적 진실은 무엇일까?

연인들의 눈을 멀게 하는 사랑의 호르몬

사람이 사랑을 할 땐 마음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사랑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상명대 생물학과 이성호 교수는 “뇌는 사랑의 각 단계마다 그에 따른 신경 조절 호르몬을 분비해서 사람의 기분과 몸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뇌가 이러한 사랑의 호르몬을 분비할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데는 1백만 분의 일초도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느끼고 나면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이 때는 상대방의 얼굴만 봐도 밥 세 끼를 먹은 것보다 더욱 풍족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도파민 외에도 옥시토신, 엔돌핀, 아드레날린, 페닐에칠아민과 같은 호르몬들도 인간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변화하는데 한몫한다. 이와 같은 호르몬을 분비하는 곳이 바로 뇌의 ‘변연계’다. 서울대 신경정신과 김중술 교수는 “변연계는 일종의 정서적 두뇌로 열정적인 사랑을 느끼게 하는 감정의 정도를 조절한다”며 생리학적인 사랑의 근원으로서의 변연계를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변연계를 자극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을 유발·지속시킬 수 있기도 하다. 후각중추, 미각중추, 청각중추는 변연계를 자극해 더 짙은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상대방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인과 함께 감각을 자극하는 분위기 좋고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변하는 행동과 몸

영국 런던대 유니버시티 칼리지 심리학과 세미르 제키 교수의 뇌의 단층 촬영 연구에 의하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비판적인 평가능력을 상실한다고 한다. 이교수는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과 같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상대방의 결함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므로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는 속설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때는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게 될 뿐더러 성적 본능을 억제하려는 욕구가 저하되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의 낯뜨거운 애정행각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사랑에 빠지면 차가운 사람도 따뜻한 사람이 된다는 말도 있다. 이른바 ‘기분유지효과’로 설명되는 이 현상은 현재의 좋은 감정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부러 기분 좋은 일을 찾게 되므로 일어난다. 사랑으로 인해 일어나는 뇌의 변화가 사람의 행동까지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의 행동뿐만 아니라 몸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이교수는 “사랑에 빠진 후 기분이 좋아져서 분비되는 엔돌핀은 식욕을 줄여줘서 자연스레 살이 빠지게 하고,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과 같은 성호르몬은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피부를 부드럽게 해준다”고 말해 ‘사랑하면 예뻐진다’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님을 확인시켜 줬다. 또한 페닐에칠아민은 사람을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게 한다.

사랑에 빠진 이들에 대한 또다른 재미있는 연구결과는 사랑에 빠진 남성은 여성화되며 여성은 남성화된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남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정상 남자들의 수치보다 낮아지고 여성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상보다 높아진다. 이로 인해 습성이 비슷해지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점점 비슷해진다는 추측이 가능하게 된다. 서로 비슷해지기 때문에 결점을 보지 못하고 ‘콩깍지’가 씌게 되는 것이다.

유통기간이 있는 사랑의 호르몬

그런데 아쉽게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한 상대를 향해 평생 동안 분비되는 것이 아니다. 뇌에서 분비되던 사랑에 관한 호르몬들이 내성이 생기면 더 이상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두근두근 가슴 뛰는 사랑은 18개월에서 36개월 사이에 사라진다고 한다. 사랑의 감정이 사라지고 나서도 인간의 몸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는데, 실연을 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겪는 정서적인 후유증이 그것이다. 가벼운 우울증과 무기력이 찾아오며, 슬픔, 분노, 후회, 미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후유증 역시 평생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또 다시 사랑의 호르몬 분비가 반복된다.

뇌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랑의 호르몬을 무한히 뿜어낸다. 도파민 때문에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제어하기 힘든 열정으로 두근거리는 가슴과 빨개지는 얼굴. 이러한 뇌의 솔직한 반응을 느끼게 해 줄 한 명의 연인,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나의 뇌 속을 소용돌이치게할 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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