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개미마을. 서울지역 빈민촌을 가다

꼬불꼬불한 길을 걸어 인왕산 자락을 올라가다보면 나오는 홍제 3동 개미마을(아래 개미마을), 영등포역 바로 옆 어지러운 불빛을 자랑하는 사창가를 지나면 나타나는 영등포 쪽방촌(아래 쪽방촌).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대표적 빈민촌 중 하나다. 때아닌 더위와 함께 찾아간 이들 빈민촌에는 아직까지 밝은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들어서지 못한 채 어둠과 습기만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쪽방촌’, 1.5평에서 삶을 꾸리는 그들

낮 12시, 영등포 광야 교회 맞은편 골목은 점차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광야교회에서 매일 실시하는 무료 급식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광야교회 정병옥 간사는 “무료 급식에는 약 8백명 정도가 온다”고 말했다. 약 50%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급여수급권자(아래 수급권자)와 일용직 건설 노동자, 식당 잡부 등의 하루 일로써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쪽방촌은 일명 ‘복합슬럼갗라고 불린다. 쪽방촌은 한국전쟁 이후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모인 화부들과 사창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쪽방을 만들어서 생활할 때부터 형성됐다. 그러다가 이촌향도 현상과 더불어 농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왔으며 최근까지 서울의 극빈민촌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5년동안 쪽방촌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2급 장애인 박기태씨(53)는 현재 수급권자로 지정받아 살고 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그는 지난 2002년 수급권자로 지정받았다. 박씨는 “내가 생활하고 있는 방은 그나마 좀 큰 편”이라며 자신의 2평 반짜리 쪽방을 보여줬다. 침대와 TV, 냉장고만으로도 꽉 차는 그의 방이 그나마 큰 편이라는 말에 다른 곳의 상황이 어떤지 상상만으로도 짐작이 갔다. 박씨는 “매달 36만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한다”며 “방세 17만원을 내고 나면 한달에 약 20만원으로 생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약간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바로 광야교회와 정부에서 위탁 운영되는 쪽방상담소가 그곳이다. 지난 2001년 설립된 이곳은 매일 점심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며 일주일에 한번씩 반찬과 쌀을 쪽방촌 사람들에게 지원을 해줘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없어선 안될 곳이다. 영등포 쪽방상담소는 특히 어려운 사람들이 수급권자로 지정되도록 행정과정과 절차 등을 대신 처리해주는 등의 활동과 그 외 복지시설 확충과 지원을 하고 있다.

개미마을, 그들만의 공동체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개미마을은 말 그대로 판잣집들이 개미들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홍제 3동 동사무소측에 따르면 1960년대 이촌향도 현상으로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마을을 이뤘을 때는 약 1천여 가구까지 거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약 2백7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대부분은 과거부터 개미마을에 살고 있던 노인들이라고 한다. 동사무소측의 말처럼 장애인, 노인 등 다양한 연령층과 계층으로 구성된 쪽방촌과 달리 개미마을은 대부분 독거노인으로 구성돼 있다. 개미마을에서 산 지 25년이 됐다는 강준근씨(61)는 “여기는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인들”이라며 “이것저것 소일거리도 하고 노인정에서 놀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생활한다”고 말했다. 개미마을 노인회 오현준 회장(75)은 “여기서 사는 노인들 중 일부는 자식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그래도 편하게 생활하지만 돌봐줄 가족들이 없어서 수급권자 생계급여에 의지해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며 개미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회장의 말처럼 이곳에는 방세를 내지 못해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개미마을은 거주자 대부분이 극빈층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곳에 후원을 해주는 단체는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빈민촌이지만 세상 밖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정부의 지원 역시 미비하다. 특히 개미마을은 올해 안에 개발제한구역이 풀리기 때문에 다시 철거와 재개발 붐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홀로 사는 독거 노인은 갈 곳도 없이 집을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재개발에 대한 논의나 대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젠 빈민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찾을 때

개미마을과 쪽방촌 뿐만 아니라 지난 1960년대 이촌향도 현상이 심할 때 형성돼 약 9백여 가구가 거주하는 거여동 개미마을과 하월곡동의 달동네 역시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들이다. 이들은 갈 곳 없는 극빈층이 그 구성원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철거를 당한 후에도 반경 1km 이내에 다시 돌아와서 살고 있으며, 돌봐줄 가족도 없이 빈민촌에서 나간다면 또 다른 빈민촌을 찾아나서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노숙자나 독거노인 등의 빈민들을 위한 쪽방상담소를 설치해 각 지역에서 위탁운영을 하고, 1개월 생계급여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들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힘든 생활을 하고 있지만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기준 탓에 수급권자로 지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쪽방상담소와 같은 기관 역시 빈민촌의 규모와 사람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현재 시행하고 있는 수급권자 선정 기준의 간소화와 쪽방상담소의 대대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광야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노숙자와 독거 노인들을 위한 예배당, 주거시설, 편의시설이 모두 갖춰진 홈리스 복지센터와 같은 다양한 복지시설이 정부차원에서 마련돼야 한다. 도심 속에서 아직까지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빈민촌을 떠도는 그들에게 우리가 희망의 빛을 보여주기 위해서 관심과 지원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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