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꽃 꽃물에 젖지 않는 바람의 입김 타고

꽃대 올라온 그 자리에

총총하게 화해지는 진분홍 담배꽃이 눈뜨고 있다

꽃받침이 푸른 그림자를 벗어내기 전에

푸근한 잠에서 하늘 한 폭을 스르르 열어!

찰박거리는 연한 향기를 풍기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꽃을 피우면

잎에 숨은 초여름이 자라지 않는 것일까

칼날 위를 걷는 햇살이 팽팽한 긴장 속에

툭! 베어지고

그 소리 너머로 남겨진 혼이

담뱃잎에 맑게 솟은 매운 향을 가두고 있다

나는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촉촉하게 휘늘어지는 잎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피워보지도 못한 숨결을 빼앗긴 시간

하얀 뜨물이 환한 상처를 감쌀 때

어둠을 털고 일어난 달빛처럼 굵은 새살이 돋는다

 

어느 틈엔가, 사람의 눈길을 피해

선연한 분홍빛소리가 수런수런 깨어나 공중으로

올라간다

눈부신 바람, 햇살, 곤충들이 그윽한 입맞춤을 할 때

초가을 밭가에 잠자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담배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서울산업대 이병일군(문예창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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