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중도 앞 민주광장을 지나던 나는 간만에 듣는 네박자 구호의 율동 소리에 자연스레 광장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던 모 단위 소속 학생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그냥 무심코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으나, 역시 직업병(?)의 발로인지 이 장면을 보던 나는 ‘중도 앞에서 집회나 행사를 개최하지 않겠다’는 현 총학생회의 공약을 떠올리게 됐다.

정치적 자유주의자인 나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정치성을 대표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위와 같은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현 총학생회의 입장을 지지한다. 또한 이와 별개로 자발적 자치단위들의 행사개최는 중도 앞에서도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동안 허전했던 광장의 부산한 모습이 낯설었는지, 이들의 집회는 내게 왠지 어색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학내외 집회의 진두에서 저들처럼 율동과 구호를 외쳐대던 나였다.

학관과 중도라는 학생활동의 중심공간이 정중앙에 마주하고 있는 연세대학교의 구조는 80년대 저항문화에서 학우들을 선동하고 끌어모으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민주광장은 백양로를 지나는 연세인을 마주할 뿐만 아니라, 중도 안의 연세인들에게 투쟁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출입구이기도 했다. 대학의 아카데미즘을 상징하는 중도 앞의 광장이 투쟁과 저항의 최전선이었던 것은 행동하는 지성이 상아탑의 지성에 먼저였던 80년대의 시대정신을 단적으로 투영해준다.

때문에 다시금 조용해지고 있는 민주광장의 모습은 (이러한 해석이 다소 섣부른 감이 있더라도) 대학사회에 과거 광장의 모습을 넘어선 새로운 실천의 상이 요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장을 가득 메우던 학생들이 일상으로 돌아간 지금, 대학의 담론과 공론장은 중도나 과방처럼 일상적, 개별적인 학습과 휴식 공간들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적 정합점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보편적 당위를 대신하는 개별적 합리성의 존재를 이야기하며, 학생들 개개인의 소소한 요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대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백양로에 개체화된 연세인들은 넘쳐도 소소한 요구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찾아보기 힘든 까닭은 무엇일까?

관성화된 투쟁에 염증을 느껴왔고, 투쟁 없는 지금의 현실에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 대학생들은 이제 침묵이라는 새로운 관성에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역사적으로도 사회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제약은 무감각한 대중이었던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주어진 현실에 빠르게 관성화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성을 깰 수 있는 것이 결국 깨인 지성이라면, 학습의 일상으로 되돌아온 대학생들에게 탈출구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칼럼을 쓰는 순간에도 비판 거리를 찾지 못해 억지로 아이템을 짜맞출 궁리나 하고 있는 필자의 관성으로 찾을 수 있는 해답은 여기까지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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