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대학의 관계를 진단하다 ..... 기업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대학의 현실 고대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

삼성그룹으로부터 무려 4백억원을 지원받아 지난 5일 완공된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은 고딕 양식과 초현대식 아트리움이 조화를 이룬 멋진 외관을 자랑한다. 또한 3D스캐너스튜디오, 원격화상회의실 같은 각종 최첨단시설이 구비돼 있는 등 호텔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호화롭다. 이에 대해 고려대 부총학생회장 안형진양(법학·02)은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우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열악한 대학재정, 기댈 곳은 기업뿐?

그러나 이렇게 ‘자랑스러운’ 백주년기념관 때문에 고려대가 한바탕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 2일 고려대 총학생회(아래 고대총학)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를 반대하는 시위를 연 것이 그 발단이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들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고 이회장의 박사학위수여식은 끝내 저지되고 말았다(아래 고대사태). 고려대 대외협력처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경영철학으로 삼성그룹을 일류기업으로 발전시켰기에 이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한 것”고 설명했지만 안양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 이회장의 명예철학박사학위는 백주년기념관 건립에 대한 재정적 지원의 대갚라고 반박했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지난 2003년 어윤대 총장 취임 이후 기업의 기부를 통해 백주년기념관, LG포스코경영관 등 많은 건물들을 건립해온 고려대의 ‘업보’가 자리잡고 있다. 한편 다른 대학들도 기업에의 재정 의존이라는 고대사태의 본질에서 자유롭지만은 못하다. 이화여대에는 SK가 1백3억원을 기증·건립한 SK텔레콤관과 신세계가 1백50억원을 지원한 이화신세계관이 있으며 우리대학교도 지난 14일 삼성그룹으로부터 3백억원을 지원받아 120주년 기념도서관을 착공했다. 이는 ‘대학재정의 기부금 의존비율이 11.6%에 달한다’는 지난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아래 교육부)의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갈수록 심해지는 대학의 기업 의존 현상을 잘 반영한다.

우리나라 사립대학은 정부지원금과 재단적립금이 빈약한 실정이다. 사립대학들의 평균 재단적립금은 대학예산의 3%에 불과하며 고등교육에 투입되는 교육재정 또한 GDP 대비 0.4%로 국민사교육비의 1/6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립대학들은 총 예산의 67%를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등록금 인상을 통한 재정 확보는 학생들의 저항을 초래한다. 사립대학들이 기업 등으로부터 받는 기부금에 목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업화되는 대학의 기부금 세일즈

자연히 각 학교의 기부금 유치 전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각 대학들은 건물이나 강의실에 기부한 기업이나 개인의 이름을 붙이는 ‘네이밍’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경희대는 건물이름을 경매하는 방안을, 고려대는 건물뿐 아니라 단과대의 명칭앞에도 기부자나 기업의 이름을 붙이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이 경우 각 단과대가 ㄱ그룹 법과대학, ㄴ그룹 경영대학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고려대는 지난 2004년 1천1백94억의 기부금을 유치, 전년도에 비해 133%의 증가율을 기록했고 부산대와 우리대학교도 각각 4백50억과 7백10억의 기부금을 유치했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장유진양(철학·01)은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이 상품을 파는 기업같이 행동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이러한 기부문화를 장려하고 있다. 지난 3일 교육부는 기업이 대학에 기부할 경우 세금공제비율을 50%에서 전액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한 모든 국립대학의 예산 50%를 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하던 기존 방침에서 앞으로는 학교평가에 따라 차등을 둬 지급하기로 해 국립대학도 기부금 유치를 위해 발벗고 뛰어야 할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지난 2002년 취임 이후 기업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무려 7백80억을 모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국민세금으로 부담할 교육비를 기업이 대신 내주겠다는데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성균관대 윤승덕군(경영·04)은 “대학의 재정을 기업이 지원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이로 인해 대학교육이 기업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다”며 “최근 대학교육에서 도입하고 있는 토익졸업제한제나 상대평가제와 같이 경쟁체제를 강화시키는 요소들이 결국 기업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김세균 교수도 “기업의 요구에 발맞춘 대학의 맞춤형 인재양성전략에 따라 소위 ‘돈벌이’가 안되는 인문계 등은 도태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교육부가 지난 1월부터 산학연계 강화를 통한 청년고용촉진대책을 도입해 대학이 산업수요에 맞춰 대학교육과정을 편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실태를 여실히 반영한다.

실제로 고려대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부총장 이하 보직교수 전원이 사표를 내며 기업이라는 거대자본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시위를 주도한 5명의 학생들에 대해서는 징계조치를 검토중이다. 또한 고대사태가 발생하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기업에 의한 학교의 종속을 규탄하는 목소리 대신 ‘이제 우리는 삼성에 취업못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먼저 터져나왔던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대학?

지난 18일 주동자 징계에 대한 고대총학의 본관 항의방문에 이어 지난 19일 고대총학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고대사태는 이제 마무리 단계로 접어드는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은 끝의 시작이 아니라 시작의 끝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백주년기념관이나 탄핵 등이 아니라 기업에 의한 대학의 사실상 경제적 종속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학가에는 “기업의 투자로 대학의 질이 높아져서 기쁘다”고 말하는 성균관대 이승준군(경제·04)같은 학생의 주장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갈수록 대학의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때 김교수의 말처럼 인재양성의 요람인 대학이 기업의 논리에 종속될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사태 내내 기업의 비위맞추기에 급급했던 고려대의 태도는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이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대학으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하는 우려를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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