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을 뜨겁게 달궜던 KT의 인터넷 종량제 논의가 잠시 수면 밑으로 들어갔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잠 시일 뿐이다. 인터넷 요금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사실 인터넷 종량제 논의는 애초에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져 있었다. 그것은 첫째, 종량제 도입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KT측 논리의 허구성 때문이다. KT측 주장을 요약하면 ①현행 정액제 체제에서는 상위 5%의 이용자가 전체 트래픽 의 40%를 차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인터넷을 적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있으며②전기나 수도 요금 을 종량제로 매기듯 인터넷 이용 요금도 종량제에 따르는 것이 형평에 맞고 ③인터넷 종량제는 과도한 인터넷 이 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터넷 중독 등 부작용을 줄이는데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위 5%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인터넷 환경 하에서 이용하는 것이기에 트래픽의 점유가 높다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종량제를 통해 설비증설 비용을 확보해야 한다는 KT측 주장에 미루어 짐작컨대 종량제 도입 이후에도 나 머지 95%의 요금이 낮아질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인터넷은 소모되는 물자가 아닌데 이를 전기나 수도 요금체계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오히려 인터넷은 하나의 매체라는 점에서 이미 정액제 요금체제로 유지되고 있는 TV나 신문에 비유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인터넷 중독 예방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궤변에 불과하다. 요금 부담 이 두려워 인터넷 이용을 줄일 수 있을 정도의 통제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인터넷 중독이 아니다. 그리 고 진짜 인터넷 중독자라면 교육과 치료를 통해 치유해야지 종량제를 도입한다고 간단히 치유될 일이 아니다.

둘 째, KT가 종량제 도입의 당위성만 주장할 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입을 꽉 다물고 있어서 괜한 추 측과 혼란만 야기시켰다는 점도 잘못된 일이다. 어떤 형태의 종량제이며 요금은 어느 정도인지 등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아직까지 무엇 하나 정확히 확인된 바 없다. 인터넷 종량제를 둘러싼 논란이 분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 작 KT는 시민단체의 토론회나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에 하나도 응하지 않았다. 이는 국가 정보통신망을 책임지고 있는 대기업답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이다.

셋째, 그간의 논란이 정액제냐 종량제냐의 이분법적 구도로 진행된 점 도 반드시 짚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사실 정액제와 종량제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선택해야 하는 차원의 사안은 아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다양한 요금 체제가 마련되고 소비자 주권에 의거하여 그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만 있다면 정액제냐 종량제냐 하는 양자택일식의 논란은 자연히 사라질 일이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인터 넷 접속 비용의 합당한 수준과 방식을 찾기 위한 보다 투명하고 진지한 논의를 한번쯤은 제대로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의 인터넷 요금체계가 불합리하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 해도 그 변화의 방향이 기업 의 이해관계를 소비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이미 휴대전화의 경우는 이용자가 자 신의 이용패턴에 따라 유리한 요금체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의 폭이 마련돼 있다. 인터넷도 휴대전화 처럼 요금체제를 다각화시키면 된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면 그 뿐이다. 소비자 주권에 입 각한 요금체제의 다각화야말로 인터넷 종량제를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인, 그리고 유일한 해결책이다.

/경희사이버대학 NGO학과 민경배 교수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