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 관심집중! 인터넷 종량제 찬반논쟁

“당신이 사용한 만큼 돈을 내라.”

누군가에게 저런 말을 듣는다면 ‘에누리 없이 너무 원칙적인 것 아니냐’며 투덜거릴지 몰라도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매우 합리적으로 여겨지는 이 주장에 대해 당당하게 ‘잘못됐다’고 말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인터넷 종량제다. 인터넷 종량제란 현재 한달 동안 정해진 요금을 내고 마음껏 쓰는 정액제와 다르게 인터넷을 사용한 만큼 돈을 내는 것이다. 이때 ‘사용한 만큼’이란 것은 사용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사용한 용량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인터넷 종량제는 사용량이 많은 네티즌과 인터넷 기반 사업자들에게 불리한 반면, 이용량이 적은 네티즌이나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 측에서 볼 때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서로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만큼 그 찬반 의견도 첨예하게 대립한다.

인터넷 종량제를 찬성하는 입장의 대표적인 근거는 ▲사용량의 차이를 반영할 수 있어 형평성을 기할 수 있다는 점 ▲인터넷 중독 현상을 줄일 수 있다는 점 등이 있으며, 반대하는 입장의 대표적인 근거는 ▲온라인 참여문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 ▲인터넷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정보격차의 문제 ▲인터넷 관련 사업들의 위축 등이다.

인터넷 종량제 논란 추이

인터넷 종량제 관련 논란은 지난 2004년 4월 EBS가 온라인수능강의를 시작하면서 접속 폭주 현상이 예상됨에 따라 KT를 비롯한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들이 인터넷 종량제를 도입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이 주장은 빠르게 네티즌들 사이에 퍼져나가 거센 반대 여론이 형성됐으나, KT에서 잘못된 정보라고 밝히면서 논란은 곧 수습되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10일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이 ‘네티즌과의 토론회’에서 “인터넷 종량제와 관련한 논의가 수면 위로 공론화되는 시점에 공청회도 열고 외국 사례도 적극 검토해 방침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인터넷종량제는 다시 핫이슈로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3월 11일, KT 주주 총회에서 이용경 사장이 ”인터넷 종량제에 관해 정부와 사업자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각 게시판은 강한 반대를 주장하는 네티즌들의 의견으로 가득 찼다. 이러한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히게 되자 진장관은 “인터넷 종량제는 신중하게 접근할 사항“이라고 말하고, KT측 역시 “인터넷 종량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KT는 인터넷 종량제의 도입 의지를 꺾지 않았고 네티즌들의 반대 여론 역시 확고한 상태에서 현재의 조용한 모습은 폭풍전야를 연상시킨다.

네티즌들의 반발

인터넷 종량제를 반대하는 네티즌들은 인터넷 상에서 활발하게 반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터넷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네티즌들까지 각종 게시판에 KT의 인터넷 종량제 찬성 의견에 대해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져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요금을 정액제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국회에 청원할때 쓰일 기초자료로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초고속 인터넷 포털 싸이트 비씨파크(www.bcpark. net)에서는 지난 2004년 4월 9일부터 오는 2006년 12월 2일까지 시행될 ‘인터넷 종량제 반대 1천만인 서명 운동’ 에 5월 20일 현재 27만 여명의 네티즌이 참여했다. 비씨파크 대표이사 박병철씨는 “인터넷 종량제가 시행될 경우 초고속 인터넷 업체들은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인터넷 이용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높아져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 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며, 네티즌들이 인터넷 종량제 반대 서명 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편, 많은 네티즌들은 자발적으로 ‘종량제 이렇게 반격하자’라는 제목의 지침을 각 게시판에 불붙듯 퍼뜨리기도 했다. 이 지침에는 KT의 포털인 파란닷컴 탈퇴, KT와 KTF 상품 불매운동, ‘KT 인터넷 사용자들은 조그만 불만이 생겨도 적극적으로 항의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네티즌들의 거센 반대운동은 KT의 ‘2007년에 인터넷 종량제 도입하겠다’는 주장을 저지하고 있다.

논란해결을 위한 자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권수천 박사는 “엄연한 사회 제도인 인터넷 요금 제도를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도입하려 했던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비판하며 네티즌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권박사는 일부 네티즌들이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감정적 반응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 입장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인터넷 사용 형태가 다양한 만큼 인터넷 요금의 다양화를 필요로 하는 시대의 한 흐름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현재의 논의에서 어느 한 요금제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터넷 요금제로의 가능성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 상으로 나타나는 여론은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네티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만큼, 현재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 종량제에 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집단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5월 8일자 「동아일보」에 ‘인터넷 종량제 득보다 실 많아’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종량제 반대의견을 펼쳤던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임종인 교수 역시 무조건적인 반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를 보이며 KT의 입장도 생각해야 함을 주장했다. 임교수는 “KT측이 민영화되면서 독점이익을 누렸다고 하지만 국가전용망이나 국방망 등 수익성이 미미한 분야의 책임을 지고 있다”며, “그동안 많은 수익을 냈던 유선 전화 이익이 약 15%씩 줄고 있는 시점에서 점점 대용량 멀티미디어를 중심으로 광대역화 되는 인터넷 망에 투자할 수 있는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교수는 “KT측이 자금난에 빠져 인터넷 망에 투자를 줄이게 되면 한국 IT경제에 타격이 크고, 인터넷 서비스 역시 부실해질 수 있다”며, “어느 정도의 요금인상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도 도입에 앞서 공감대 형성돼야

현재 지루할만큼 계속되는 인터넷 종량제 논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 요금에 얽혀있는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나누는 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대용량 자료들이 범람하고 ‘유비쿼터스’라는 새로운 통신 환경이 조성되면서 현재 인터넷 요금제는 현 정액제에서 다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인터넷 종량제든 정액제든 ‘요금 제도의 도입’ 문제는 정부, 사업자, 소비자 등이 먼저 공감대를 형성한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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